부자되고 싶다고 벤츠 먼저 살 것인가

정보철 창업 칼럼니스트 | 2009.09.01 12:07

[창업 칼럼]역사 속에서 배우는 승자의 언어

시주를 구하는 지주에게 감지행자가 말했다.

“내 물음에 답한다면 즉시 시주를 하겠소.”

감지행자는 심(心)자를 써놓았다.

“마음 심자입니다.”

감지행자는 아내를 불러서 물었다.

“이것이 무슨 글자요.”

“마음 심자입니다.”

그러자 감지행자가 지주를 보며 말했다.

“내 촌뜨기 마누라도 암자의 주지가 될 수 있겠군.”

지주는 시주를 구했을까. 그보다는 지주는 감지행자의 말뜻을 알아챘을까. 혹 속지는 않았는지.

“속았다.”

지인(知人)이 곧잘 하는 말이었다. 허공에 대고 속았다는 말을 불쑥 내뱉곤 했다. 지나 놓고 보니 한번쯤은 물어볼 것을 그랬다. 속는 대상에 대해 한번 따져 볼 것을 그랬다.

필자의 논법으로 따지자면 속고 속이는 대상은 벤츠다. 부자가 되기 위해 벤츠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부자가 된 다음에 벤츠를 사도 늦지 않을 터인데 굳이 벤츠부터 산다. 벤츠를 사고 나면 부자가 되기 쉽다는 착각을 한다. 벤츠를 탄 ‘무늬 만 부자’들이다. 의외로 많다.

벤츠를 먼저 사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돈 벌기보다는 벤츠를 사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벤츠를 사면 곧 부자가 될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과정 없는 결과를 기대하는 미성숙을 상기하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벤츠가 불러일으키는 부자의 이미지다. 사람들은 실체보다는 이미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전전긍긍한다. 부자로 보이는 것과 실제로 부자가 되는 것은 차원이 전혀 다른 얘기다. ‘그림의 떡’은 진짜 떡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다. ‘그림의 떡’은 어떠한 경우에도 배고픔을 달래주지 못한다.

이미지는 허상이다. 실체가 없다. 실체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림자를 좇는 것은 허상 속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당연히 그림자에 속은 것을 알게 된다.

허상에는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그림자를 갖고 있을 리 없다. 실체만이 그림자를 거느린다. 실체는 본질이다. 그림자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실체에 그림자가 존재하듯이 본질이 있는 다음에 부수적인 것이 따른다.

나무로 말하자면 본질적이고 실체적인 것은 뿌리다. 부수적인 것은 가지와 그에 딸린 이파리들이다. 뿌리에서 가지가 나오지, 가지에서 뿌리가 나오지는 않는다.

화려한 가지와 이파리는 널려 있다. 그리고 화려하다. 사람들이 쉽게 속는 이유다. 가지와 이파리에 현혹되면 모든 것을 놓치게 된다. 근본을 잊고 끄트머리만 쫓는 피곤한 삶이다. 애는 쓰는데 뚜렷한 결과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가지에 집착하는 것인가. 뿌리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중국 춘추시대에 명마를 알아볼 줄 알았던 백락의 얘기를 들어보자.

백락은 진나라 목공에게 구방고라는 친구를 소개했다. 석달 만에 구방고가 말 한마리를 끌고 왔다.


“황색의 암컷을 구해왔습니다.”

그러나 말을 본 목공은 실망한다. 구방고가 구해왔다는 말은 수컷에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화가 치민 목공은 백락에게 따져 물었다. 백락은 한마디로 목공의 말문을 막았다.

“그가 본 것은 천기입니다. 그는 말의 정수만을 파악하고 그 대강의 외형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말의 내면을 보고 그 외모는 잊은 것이지요. 그는 살펴보아야 할 것을 살피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빠트린 것입니다.”

그 말을 가져다보니 과연 천하의 명마였다. 열자에 나오는 일화다. 열자는 무슨 말을 하려했던가. 본질적인 면을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겉으로 드러난 비본질적인 것에 치중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일화는 빈모려황(牝牡驪黃,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면을 파악)이라는 고사성어의 배경이 됐다.

중국의 고전 <회남자>에 나오는 부저추신(釜底抽薪)도 빈모려황과 같은 맥락이다. 솥 안의 물을 식히려고 가마 밑의 땔나무를 치워버린다는 말이다. 솥을 열어 놓는다고 끓는 물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찬물을 끼얹는 것도 근본대책은 아니다.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근본대책을 세울 수가 있다. 핵심적인 것을 나두고 부수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고서는 성과를 올릴 수 없다.

성과를 예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을 살펴보면 된다. 보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성공한다. 부수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패배한다. 전자는 승리할 만한 일을 했고, 후자는 패배할 만한 일만 했다. 패배할 만한 일을 하면서 이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부수적인 일을 확실하게 해 놓으면 본질적인 것이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항상 그들을 배신한다. 기원전 53년 로마와 파르티아 간에 벌어진 카레전투는 그 한 예에 불과하다.

이 전투의 하이라이트는 로마 장군 크라수스를 유혹한 아랍노인이다. 제2의 알렉산더를 표방한 크라수스의 명예심을 교묘하게 자극, 싸우기 불리한 지역인 카레지역으로 로마군을 유도했다. 그림자를 좇아간 전형적인 사례다. 노인의 말이 아무리 그럴 듯 하다해도 그것은 부수적인 사안이다. 전쟁의 본질에 보다 접근했어야 했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크라수스는 목숨을 잃었고, 로마는 이후 동쪽으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동서양 경계가 정해졌다. 카레전투는 로마가 복수하지 않은 최초의 전투이다. 그만큼 로마의 타격이 심했다. 전투의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치고는 손실이 너무 컸다.

전쟁뿐만 아니다. 비즈니스 예술 스포츠 등 인간사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게 바로 본질이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본질을 놓치는 것은 곧바로 경쟁에서 탈락을 의미한다. 비본질적인 것만으로는 경쟁자를 제압할 핵심역량을 만들 수 없다.

성공은 부수적인 것들로부터 본질적인 것을 구별하는 능력에 좌우된다. 부수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 본질이 아닌 것은 버려야 한다. 극소량의 본질만 남기고 철저히 불살라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를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하고 의미 없는 놀음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자는 얘기다. 그래야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단연 본질적인 것, 즉 뿌리다. 뿌리는 승자의 언어요, 가지는 패자의 언어일 수밖에 없다.

본질은 가까운데 있다. 우리가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플라톤의 철인(哲人), 차라투스트라의 초인(超人), 장자의 지인(至人)만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도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 부수적인 것에 현혹되지만 않으면 가능한 일이다.

단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절실하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사물에 내맡긴 채 세상 물정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취사분별이나 의견대립이 잦아들 것이다. 그곳에 현안의 본질, 뿌리가 있다.

반면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오히려 기만적인 우상 숭배로 이어지는 게 태반이다. 비본질적인 우상의 난립이다. 그곳에는 현란한 대립과 혼동만 있을 것이다.

기실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 관점을 버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선가의 말씀처럼 ‘한번 크게 죽어야’ 가능한 일이다. 오늘 이전의 어제 죽었고, 이후에 사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이 요구된다. 개인에게 커다란 아픔일 수 있는 단절은 그러나 자아 중심적 관념을 깨뜨리는 절대적인 도구다. 서두에 나오는 지주는 단절이라는 도구의 존재조차 몰랐다.

지주는 시주를 얻지 못하고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의 능력 밖이다. 본질과 부수적인 것, 뿌리와 가지를 분간하지 못한 아둔함만 난무한다. 감리행자가 의도한 바를 감지조차 못했다. 차라리 다섯살배기 꼬마라면 감지행자와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새옷 입고, 새신 신고 잔칫집에 가는 날이다. 꼬마가 엄마에게 말했다.
“담배 하나 줘봐.”

엄마는 기가 찼다. 그런 엄마를 무시한 채 꼬마가 두다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폼 나잖아.”

담배를 꼬나문 자세를 취하면서 하는 말이다.

일단 폼 난다. 생동감이 넘친다. 필자가 감리행자라도 지주에게 시줏돈을 희사하기보다는 꼬마의 손에 용돈을 쥐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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