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소문이거나 그의 경쟁자에게는 좀처럼 들이대지 않는 불공정한 잣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들은 그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가 아니다. 사실은, '그냥' 그가 싫은 것이다. 그리고 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그냥 싫은 이유의 숨은 알맹이는 대부분 그가 '전라도'라는 데 있다. '그냥'이나 '전라도'는 싫어할 명분이 안 되니 좌경이니 권모술수니 하는 싫어할 만한 명분을 내세우는 것이다. 아닌가? 생각해 보시라.
그를 싫어하는 이러한 사정은 장삼이사에 그치지 않는다. 지적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부류에 속하는 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 중앙언론의 전직 주필에 현직 대기자라는 자의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칼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사경을 헤매고 있던 그와 그의 가족에게 괜히 독재정권 운운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려 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그동안 거둬들인 비자금이나 모두 밝히고 떳떳하게 죽으라는 취지의 글이다. 필자의 이 비극적 심리상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달리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이 순간에도 드러내지 못할 뿐, 이러한 심리상태를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가 왜 조기를 달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국장거부운동을 공개적으로 밝힌 국민행동본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국민행동본부야 그렇게 자신의 정책과 노선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으니 결국 대중의 지지 여부에 따라 해결될 것이고, 딱히 걱정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냥 그가 싫은 말없는 장삼이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사실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래서 싫다는 논리도 아닌, 그냥 싫다는 감정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적어도 내 지인들에게는 두 가지를 부탁하고 싶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이 정도 부탁은 할 수 있으리라.
먼저 주위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냥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민주주의가 진전하고 정보가 시민에게 공개됨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성과 성찰에 눈 닫은 맹목과 닫힌 마음이 거꾸로 고립을 자초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자신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는 그를 싫어하더라도 염치는 가지자는 것이다.
마음 놓고 대통령 욕을 해도 아무 걱정이 없는 데에 부도 직전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도약을 바라보는 데에 한쪽에서는 남북한 군인들이 국지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전쟁의 공포 없이 월드컵 구경을 할 수 있었던 데에 그가 한 역할은, 그가 싫더라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에게 흠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공정하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의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성과는 누리면서 마냥 "그냥 싫어." 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일 아닌가.
강준만은 1995년 「김대중 죽이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정치평론이 쓰레기라는 데 동의한다면, 쓰레기 종량제는 정치평론에도 적용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동의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정치평론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김대중은 진짜 죽어도 된다. 편안하게 눈을 감아도 된다."
15년이 지난 오늘 그의 국장일, 그를 위한 조곡이 울려 퍼지는 지금, 그는 편히 눈을 감고 있을까. 쓰레기 정치평론은 여전히 창궐하고 있지만, 그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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