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연애고수와 북한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 2009.08.22 10:10
연애를 잘하려면 소위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한 순간에 금방이라도 떠나버릴 것처럼 애태우고 차갑게 돌변할 줄 알아야 상대방을 오래도록 손아귀에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일종의 연애전술인 셈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통한다. 안 볼 때는 '이 사람이 나랑 사귈 마음이 있긴 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하게 굴다가 막상 만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은 수를 알 든 모르든 페이스에 말려들고 만다.

연애로 치자면 북한은 '선수 중의 선수'요, '고수 중의 고수'에 가깝다. 통일은 커녕 잘 지내볼 의사도 없다는 듯이 모든 연락 수단을 차단하고, 우리측 근로자를 잡아두고, 핵실험을 하면서 속을 썩이더니 한순간 태도를 바꿨다.

지난 10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보따리를 풀더니 끊임없이 선심을 쓰고 있다. 육로통행 제한을 해제하면서 '12·1조치'를 슬쩍 해제하질 않나,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고위급 조문단을 파견하질 않나, 내친김에 억류된 지 20일이 넘은 연안호도 풀어줄 태세다.

우리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다가오는 대로 무작정 받아줄 수도, 저만치 멀어지라고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잘해보자고 덤벼드는 상황도 아니니 입장은 더욱 난감하다. 북한은 민간사업자인 현대그룹과 교류 합의안을 발표하고, 김 전 대통령 측근을 통해 조문단 파견을 통보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에 이어 '통민봉관(通民封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제대로 본 것 같다"고 토로할 정도다.

북한의 입장 선회를 두고 여러가지 관측이 무성하다. 유화 제스처를 통해 결국 미국과 관계개선을 바라는 것이란 의견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렵다보니 남북 경협을 회복시켜 달러를 확보하려는 속셈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북한은 당분간 '당기기'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당하는 입장에선 노선 정리가 시급하다. 원칙에서 한걸음 물러서더라도 이대로 북한을 껴안을 것인지, 아니면 관계가 다시 악화되더라도 한 걸음 물러설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연애에도 권력관계는 존재한다. '재발 방지'와 '제도적 장치 강화'를 요구하는 정부의 목소리가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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