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큰어른' 잇단 서거 '충격'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 2009.08.18 16:33
올해들어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했던 세 사람의 거목이 잇달아 서거하면서 많은 이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16일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18일 오후 1시43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눈을 감았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막막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라의 큰 어른이 연이어 돌아가시니 빈 들판에 내던져진 듯 허허한 마음이 든다"는 하소연들이다.

김 전 대통령은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받으며 회복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이내 폐색전증 발병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다 끝내 세상을 등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 등장 후 줄곧 군부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투옥, 수감, 망명생활을 계속했다. 1980년에는 학생 소요사태를 배후 조종한 혐의로 구속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정부'를 이뤄냈다. 재임 당시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하고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남북화해와 통일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에는 이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간 김 전 대통령을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애틋함 그 자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도 탓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5월 23일 봉화마을 사저 뒤편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오전 9시 30분께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박연차 게이트' 등 측근에 대한 잇따른 검찰수사 와중에 벌어진 노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시민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국민장으로 치러진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 노 전 대통령의 고향 봉화마을에는 수백만이 넘는 인파가 몰려 애도를 표했다.

인권변호사로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던 그는 5공 청문회을 통해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극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국정원, 검찰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치자금법과 성매매방지법을 제정하는 등 사회질서 부분에서도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김수환 추기경은 1970~80년대 군사독재 억압 속에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낸 성직자였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1월26일 명동성당에서 인권회복미사를 열어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추기경으로 활동하면서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각 영역에 목소리를 낸 시대의 '큰 어른'이었다. 김 추기경 선종 당시 명동성당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추기경을 추모하는 인파들이 끊이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 같은 시대의 지도자를 잃은 상실감은 자칫 무기력증, 우울증, 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황상민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사망했을 때, 그 인물에 대한 애착이 크고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은 우울증과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며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인 만큼 스스로 마음을 잘 살펴서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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