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추억의 동화전집을 구하라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 2009.08.17 08:12
“꼭 제게 팔아주세요. 한 권이라도 빠지면 안돼요!”
“인터넷에 2년간 글을 올렸더니 드디어 판매자가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책이 있다. 출판사는 사라졌고 국내 저작권도 없다. 그런데 찾는 이는 많다. 헌책방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수십 권이 한꺼번에 팔려 나갈 정도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동화책 ‘에이브(Abe) 전집’, ‘메르헨 전집’, ‘소년소녀세계현대명작전집’ 등이 이제는 성인이 된 30대들의 추억을 자극하고 있다.

외판원이 집집마다 책을 팔러 다니던 시절, 에이브 전집을 처음 접했다는 누리꾼 guri***.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에이브 88권 중 44권을 할부로 사주셨다”며 “동화인데도 심도 있는 이야기가 많아 어린시절 날 키워준 책”이라고 애정을 표했다.

에이브 동화책은 제목도 남다르다. ‘파묻힌 세계’, ‘아이들만의 도시’, ‘시베리아 망아지’, ‘막다른집 1번지’, ‘매는 낮에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마침내 날이 샌다’, ‘늑대에겐 겨울 없다’ 등 어린이를 위한 동화인가 싶을 정도다.

세월을 뛰어 넘은 인기 비결은 소재에 있다. 위인전이나 권선징악적 전래동화와는 다르다. 전쟁, 기아, 인종차별, 인류사, 과학 등 다양한 소재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풀었다. 학원출판공사가 당시 세계 각국의 동화를 발굴, 번역해 책으로 펴내 배경도 각양각색이다.

스웨덴 동화작가 해리 클만의 ‘한밤의 소년들’은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불행한 삶을 사는 청소년을 다뤄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은 호르스트 부르거의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히틀러에 저항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등 독일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송영택 시인이 직접 번역했다고 알려져 있다.

‘노란책 찾아 삼만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계몽사와 금성출판사에서 출간했던 소년소녀세계현대명작전집 30권도 인기다.


전집 중 ‘외톨이 소녀(출간명 외토리 소녀)’는 1950년대 미국에서 출간된 ‘미지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nowhere)'를 번역한 책이다. 이 밖에도 ’사자와 마녀‘, ’바닷가의 축제‘, ’유쾌한 하우머’ 등은 책 삽화를 모두 스캔해 인터넷에서 공유할 정도로 여전히 인기다.

학원출판사의 메르헨 전집 55권도 마찬가지다. 헌책방에서 권당 8500원 상당에 거래될 정도다. ‘작은 티스푼 주머니’, ‘초컬릿 공장’ 등은 손에 넣기 힘든 희귀본이 됐다.

이렇게 인기인데 책이 왜 다시 안 나올까. 당시 이 동화전집을 냈던 출판사들이 지금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1980년대에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일본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형식의 '해적판'이 성행했다. 때문에 전집의 모든 작품을 정식으로 해외 원작자의 저작권과 판권을 사 번역, 출간한 게 아닐 경우 재출판이 쉽지 않다.

수년전 부도를 맞은 도서출판 계몽사 관계자는 "소년소녀세계현대명작전집은 출판사가 문을 열면서 5권으로 시작해 30권을 완성하기까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라며 "회사가 문을 닫기 직전인 2000년대 초반 일부 작품을 묶어 재출간해 매진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도 찾는 독자가 많지만 그때 원본을 다시 출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추억의 동화집을 찾아 헌책방을 뒤적이는 이들의 수고를 덜 뾰족한 방법은 당분간 없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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