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벼랑 끝 타결, 3色 리더십 큰 역할

머니투데이 김보형 기자 | 2009.08.06 18:21

박영태 '안방마님', 이유일 '비전제시', 류재완 '실무진행'

↑6일 오전 경기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회사측 박영태 법정관리인과 한상균 노조지부장이 최후의 협상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제공>>
6일 점거파업 77일만에 극적으로 타결된 쌍용자동차 노사협상 타결의 주인공은 당연히 노사모두 지만 심각한 경영위기와 점거파업을 겪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 있어 쌍용차 부활의 발판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특히 이유일, 박영태 공동관리인과 류재완 인사노무담당 상무를 안팎에선 일등 공신으로 꼽는다. 우선 실질적으로 노사협상을 진두지휘한 박영태(48) 관리인은 중앙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쌍용그룹이 쌍용차의 전신인 동아자동차를 인수할 당시 쌍용그룹의 인수팀으로 쌍용차에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쌍용차 재무 분야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 온 말 그대로 '쌍용차 맨'이다.

박 관리인을 떠올리는 직원들은 우선 그의 성실성과 열정을 높이 평가 한다. 박 관리인과 몇 차례 숙직근무를 했다는 한 연구팀 직원은 "당시 회계재무 담당 과장이던 박 관리인이 각 자동차 회사들의 회계 방법이 담긴 두꺼운 서류를 밤새도록 검토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대우그룹과 상하이차에 쌍용차가 인수됐을 때도 그는 쌍용차의 생존을 목표로 두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노조측이 '상하이차의 앞잡이'라고 날선 비판을 하는 것도 일종의 애정이라는 평가다.

서울과 평택을 오가며 현장의 사측 대표단과 의견을 조율하고 채권단 등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해온 이유일(66) 관리인도 협상 타결의 숨은 공로자다.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쌍용차 출신은 아니지만 한국자동차 산업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포니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고 정세영 당시 현대차 사장을 도와 1976년 국내 첫 고유모델인 '포니' 5대를 중남미 에콰도르에 수출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 관리인은 인사와 총무, 수출, 기획, 제품개발, 해외영업 등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고 특히 미국 법인 사장과 해외부문 사장으로 일한 만큼 해외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다.


실제 이 관리인은 쌍용차의 해외 인수 후보자와 꾸준히 접촉을 진행하면서 회생의 불씨를 살려냈고 스즈키나 스바루 같은 일본 소형차 회사와 쌍용차가 연계해 소형차 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쌍용차를 살리려는 임직원들의 의지가 존경스러울 정도로 강하다"며 임직원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또 실무협의를 맡아 노조측과 쟁점 사안들을 일일이 협의해온 류재완(47) 인사노무담당 상무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류 상무는 89년 공채로 쌍용차에 입사해 20년째 인사만을 담당해온 '인사 통'으로 회사내부에서는 원리원칙주의자이면서도 합리성을 갖췄다고 인정받고 있다.

류 상무의 소신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끈 건 지난 24일 열린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노사정 간담회'자리. 그는 국회의원 앞에서 당당히 "의원님, 1000원 아니 10원이라도 주십시오. 쌍용차에 단 돈 10원이라도 지원할 능력이 있는 분들이 오셔야지…"라며 우회적으로 정치권의 생색내기 행사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도장공장에서 점거중인 노조원들에게 의료진과 의약품의 접근을 허용하는 문제에서는 '한 때는 우리 동료이자 가족이었던 사람들'이라며 의료진 출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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