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동안 PC 제조사들의 신제품하면 으레 최신 인텔 중앙처리장치(CPU)와 최신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운영체제(OS)로 무장한 고사양 PC가 메인이다. 여기에 구색 맞추기 차원에서 저가형 PC를 일부 끼워 넣는 게 일반적이다.
때마다 반복돼온 PC제조사들의 이같은 신제품 전략이 올들어선 180도 달라졌다.
핵심 전략제품에 저가 PC인 미니노트북(넷북)을 내세우는 한편, 게임 전용 노트북, 어린이PC, 거실용 PC(올인원PC) 등 사용목적별로 특화된 세그먼트(Segment)별 제품을 전진배치시키고 있다.
신제품 전략이 사양에서 용도 중심으로 점차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셈이다.
미니노트북(넷북) 열풍을 불러온 새로운 풍속도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넷북'이 불러일으킨 이용자들의 똑똑한 소비(?) 열풍이 PC 신제품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넷북', '똑똑한 소비'를 깨우다
그러나 넷북이 기존 PC 시장의 지형을 바꾸는 태풍의 핵으로 부각될 지는 윈텔(MS-인텔)진영에서조차 예측하지 못했다.
사실 지난해 초 MSI와 아수스 등 변방에 머물러왔던 대만계 PC업체들이 넷북을 내놨을 때만해도 델, HP, 삼성전자, LG전자, 삼보컴퓨터 등 국내외 메이저 PC제조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해왔다.
저가 PC가 PC 메이커들의 '마진' 확보에 약 보다는 독이 될 수 있는 우려가 깔려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신제품'하면 무조건 고사양 PC를 찾아왔던 PC 소비패턴이 쉽게 깨지진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PC메이커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3D게임은 물론 제대로된 HD영화 한편 감상하기에도 약간 모자란 듯한 성능이지만, 가벼운 무게와 기존 노트북의 반값에 불과한 착한 가격이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여기에 와이브로나 무선랜 등 모바일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언제어디서나 간단하게 인터넷을 쓸 수 있는 넷북이 새로운 유행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다.
델, HP 등 외산업체에 이어 삼성전자, LG전자, 삼보컴퓨터 등 국내 PC 대표 브랜드들이 뒤늦게 '넷북'을 핵심 전략사업으로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물론 여기에는 때마침 터져나온 경제위기와 맞물려 '박리다매'를 노리는 경쟁심리가 부채질한 측면도 없지않다.
실제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올 1분기 전세계 넷북 판매량은 450만대. 전년 동기 대비 7배나 늘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넷북 시장은 전체 PC 시장의 43%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이같은 넷북 열풍은 'PC 신제품은 무조건 고사양이 좋다'며 상당기간 메이커들이 반의도적으로 강요해왔던 '공급자 중심 마케팅'의 허구가 깨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평소 인터넷 서핑과 문서작성 등이 주된 사용 목적이라면 굳이 값비싼 고사양 PC를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PC 제조사들의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사용 목적에 부합된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PC 신제품 트렌드 '사양→사용목적'
소비자 심리를 분석해 사용목적별로 특화된 신제품을 내놓는 이른바 '세그먼트(분할)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어린이 전용 PC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출시된 삼보컴퓨터의 '루온 키즈컴'은 직관적인 터치스크린과 30여종의 재미나라 무상 콘텐츠, 유해 스프레이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재질로 만든 어린이 전용 PC로, 출시 1개월여만에 2000대나 팔려나갔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기획단계부터 3세부터 8세 어린이에 초점을 맞춰 색상과 디자인, 구동방식, 브라우저, 콘텐츠까지 어린이가 쓰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적화한 제품"이라며 "출시 초기만해도 이 정도까지 팔려나갈 지 몰랐다"고 말했다.
델인터내셔널(델코리아)도 10인치 터치스크린에 고무로 외장을 마감한 어린이 전용 넷북 '래티튜드 2100'을 내놨으며, 대우루컴즈도 교육 도우미를 표방한 29만원대 초저가형 교육용 PC '루키드' 시리즈를 내놨다.
여기에 유경테크놀로지도 어린이 전용 노트북 '빌립 듀오'를 출시하며 시장에 가세할 태세다. 이 제품은 8.9인치 회전형 LCD가 탑재돼 있으며, 생활방수와 충격에 강하고 어린이들이 쉽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손잡이까지 장착돼 있다.
3D게임이나 HD 동영상 감상이 주목적이라면 최근 출시되고 있는 게이머 전용 노트북이 제격이다.
중저가 PC를 제조해왔던 MSI코리아는 지난달 30일 고성능 게임 전용 노트북 'GT729'를 내놨다. 이 제품은 인텔 쿼드코어 프로세서 Q9000 CPU를 탑재한데다 DDR3 800MHz 4G 메모리, 서브 우퍼 4.1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을 장착해 고화질 HD 영상이나 3D게임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델 역시 게이머들 사이에 '괴물 노트북'으로 불렸던 게임 전용 노트북 '에이리언웨어 M17X'를 국내에 들여왔으며, LG전자도 영화감상과 3D 게임에 최적화된 노트북 '엑스노트 R580'을 각각 출시했다.
이같은 소비패턴의 변화는 일명 거실용 컴퓨터로 알려진 올인원 PC의 부활로 이어졌다.
본체와 모니터가 합쳐진 올인원 PC는 그동안 150~200만원 안팎의 가격대를 형성해왔으나, 인텔 아톰 프로세서를 탑재한 대신 가격을 100만원선까지 낮춘 실속형 제품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삼보컴퓨터의 올인원 PC '루온 A1'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이래 월평균 2000대 가량 팔려나가며 이 회사의 대표 효자상품으로 부각됐다.
이같은 여세를 몰아 아수스코리아도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올인원 PC '이톱'을 내놨으며, MSI도 이달 중순 AMD 애슬론 CPU를 탑재한 18.5인치 터치스크린 올인원 PC를 내놓을 계획이다.
PC업계의 한 관계자는 "넷북 열풍을 계기로 PC 시장 트렌드가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이용자들의 똑똑해진 소비가 불러온 파급력은 향후 업계 판도변화의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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