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25년 형제경영' 왜 깨졌나

머니투데이 이진우 기자 | 2009.07.28 18:59

대우건설 인수 후유증..'오너 도움+전문경영인'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8일 오후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관에서 퇴진 기자회견을 하며 고민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명근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그룹 창업주이자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의 25주기를 맞아 지난 22일 전남 순천의 송광사를 찾았다.

선친의 위패가 모셔진 곳 인만큼 과거에도 수시로 찾았던 곳이지만 올해에는 발걸음이 유달리 무거웠다. 대우건설 인수 이후 불거진 유동성 위기와 오너일가의 지분변동을 둘러싼 형제간 불화설 등 안팎 악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박삼구 회장은 이곳에서 이미 형이 동생에게 그룹경영권을 물려주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름다운 승계' 전통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에 대해 조상들에게 사죄하고 모종의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6일 뒤인 28일 박삼구 회장은 자신과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동반퇴진과 함께 박찬법 항공부문 부회장을 새 그룹회장으로 추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1984년 창업주 박인천 회장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둘째 고 박정구 회장, 셋째 박삼구 회장으로 이어진 형제경영 전통이 25년 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총수일가 동반퇴진..무슨 일 있었나=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불화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본격화 됐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기로 하면서 형제 간 지분경쟁이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박찬구 회장측이 박삼구 회장 측에 대우건설 인수실패의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특히 박찬구 회장 쪽에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면서 지분경쟁이 본격화 됐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 부자의 지분율이 18.47%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과거 박삼구·박찬구 회장과 조카 박철완 부장이 각각 10.01%씩 금호석화의 주식을 보유하는 이른바 '황금 비율'이 깨졌다.

금호아시아나측은 이에 대해 금호석유화학 중심의 단일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형제간 불화가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박삼구 회장은 이에 대해 "박찬구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그룹경영에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의 지분변화로 인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이행 등 그룹의 산적한 현안을 두고 대주주간 경영권 분쟁 등이 거론되는 등 경영에 큰 차질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찬구 회장 측이 지분확보를 통해 가족 간의 공동경영 합의를 깼고, 이로 인해 그룹의 경영에 큰 부담을 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룹경영 어떻게 되나=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의 해임을 결정하면서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룹 측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삼구 회장은 그러나 재무구조이행약정의 이행 등 그룹의 핵심현안을 챙기는 등 명예회장으로서의 '책임경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박찬구 회장과는 달리 '대주주'로서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와 함께 40년 넘게 근무한 전문경영인인 박찬법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 그룹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기로 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에 대해 "아버님과 형님 두 분 등 선대회장이 살아계실 때 내가 유고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전문경영인이나 외부의 덕망 있는 분을 경영인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형제경영'이 꼭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니며,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회장직을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앞으로 '박삼구 명예회장-박찬법 회장'을 축으로 '오너의 힘이 뒷받침 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금호생명 매각 등 굵직한 그룹 현안의 경우 '오너의 결단'이 없으면 실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동반퇴진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박찬구 회장 측이 법정대응 등에 나설 경우 '형제의 난' 등 그룹경영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삼구 회장은 이를 의식 한 듯 "법적 하자가 있으면 누구나 대응할 수 있지만 법적하자는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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