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 직원들 '비닐봉지' 들고다니는 사연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 2009.07.28 07:30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 있는 포스코 사거리 인근. 이 일대에는 매일 점심, 저녁 시간이면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저마다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도대체 저 비닐봉지엔 뭐가 들어있을까' 궁금증으로 가득찬 시선들이 그 비닐봉지에 꽂힌다. 궁금증에 못이겨 내용물을 슬쩍 훔쳐보는 행인들도 있다. "혹시 이 주변에 기념품이라도 나눠주나요?"

27일 점심 무렵에도 변함없이 '비닐봉지 무리'들이 지나갔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거리며 한 회사의 출입문을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다.

그들이 드나들고 있는 건물은 다름아닌 온라인게임업체 엔씨소프트 건물. 슬쩍 따라들어가 비닐봉지 속을 훔쳐봤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비닐봉지에 담긴 내용물은 온통 먹을거리가 아닌가. 김밥, 빵, 샌드위치 등등. '왜 밥봉지를 들고 다니는 거지?'

알고보니, 이 회사 직원들은 밥먹을 시간이 없어 사옥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직원 식당에서 요깃거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중이라고 했다. 물론 회사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먹을거리다. 엔씨소프트는 2년째 직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직원들은 제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는 때를 놓쳐 식사를 거르는 직원들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밥 봉투'를 제공하고 있다고.

식당에서 밥을 먹지 못하는 직원들은 김밥이나 빵, 죽같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테이크아웃(Take-Out)'하는 것이다. 조선호텔 제빵사가 현장에서 직접 굽는 빵이 가장 인기라고 했다.


↑ 엔씨소프트의 한 직원이 직원 식당 내에 마련된 테이크아웃 코너에서 식사를 받아가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바쁜 업무로 식사를 거르는 직원들을 위해 간단한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엔씨소프트의 직원은 "테이크아웃 메뉴가 있어 바쁠 때도 끼니를 거르지 않아서 너무 좋다"면서 "고를 수 있는 메뉴도 많다"고 회사 자랑을 늘어놓는다. 테이크아웃 코너의 이름도 '물약상점'. 그 직원은 말한다. "게임회사다운 이름 아닌가요?"

또다른 직원이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 회사는 직원전용 피트니스센터도 있고, 어린이집도 운영해요. 그것 말고도 의료비 지원이나 뭐 이렇게 저렇게 지원하는 사원복지가 대기업 못지않아요."

엔씨소프트 홍보관계자는 "게임회사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야근도 많고 업무시간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면서 "복지에서 자칫 소외되는 직원들이 없도록 회사가 세심하게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직원 식사까지 챙기는 '유별난' 회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회사 사람들은 그런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했다. '사람이 곧 자산'이라는 회사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비닐봉지'에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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