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구조조정에 회의적인 까닭

더벨 황철 기자 | 2009.07.24 11:55

[thebell note]복잡한 용선사슬 관계 '무시'…은행 신용위험평가 '유명무실'

이 기사는 07월23일(09:0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중견 해운사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신청이 늘고 있다. 올 들어서만 해운사 세 곳이 법원 결정에 기업의 운명을 맡겼다. 2월 삼선로직스를 시작으로 이달 대우로지스틱스· TPC코리아가 연이어 회생·파산의 갈림길에 섰다.

이들은 모두 해운업계 10위권(2008년말 기준) 안팎의 견실한 기업들이었다. 지난해 극심한 업황 부진에도 양호한 영업이익·현금흐름을 보이며 내실 역시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을 받아 왔다.

특히 TPC코리아·대우로지스틱스는 은행권 신용위험평가에서 B등급으로 분류돼 워크아웃(C)·퇴출(D)과는 거리가 멀었다. 돌려 생각하면 수개월간 강도 높은 평가 작업에도 은행조차 이들의 부실을 예측하지 못한 셈.

정부가 주도하고, 은행이 앞장선 해운업 구조조정 대책에 회의적 시각을 제기하는 첫번째 이유다.

연쇄 도산 가능성 확산, 정부·은행 '팔짱'

177개 사(2008년말 기준)에 달하는 국내 해운사들은 복잡한 용·대선 사슬로 얽히고 설켜있다. 배 한척을 두고 통상 대여섯 군데 선사들이 배를 빌리고(용선) 빌려주는(대선) 형태로 영업을 벌인다.

이런 구조에서 중견 해운사의 위기는 업종 전반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10위권 안팎의 선사는 대·중·소형사간 용대선 사슬에서 가장 중요한 중간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

사실상 업계 전체가 채권·채무 관계로 엮인 구조에서 허리층의 붕괴는 상·하방으로 피해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법정관리 신청 기업과 연관한 수십 개 해운사의 줄도산 우려가 심심찮게 제기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하지만 효과적이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다짐했던 정부·은행의 대응을 보면 방관 수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인상을 풍긴다.

누누이 제기된 용선 사슬의 굴레를 감안하지 않은 도식화된 신용위험평가 자체부터 문제다. B등급 해운사의 법정관리 신청, C·D 등급의 구조조정 지연 등으로 사실상 등급 평정 자체의 의미가 퇴색했다.

일례로 TPC코리아의 부실화 과정을 보면 채권금융기관의 안일한 평가와 대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물론 TPC코리아의 재무상황만 보면 B급 이상의 대우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중견 해운사 중에서도 튼실한 재무구조를 자랑하는 기업으로 통해 왔다. 지난해 업황 부진에도 사상 최대 규모인 8825억원의 매출과 40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들의 유동성 경색은 삼선로직스의 법정관리 돌입과 함께 예견됐었다. 삼선로직스의 회생절차 개시는 신용위험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의 일이다.

TPC코리아는 삼선로직스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거래 선사로부터 채권을 원활히 회수치 못해 자금난이 점점 심각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삼선로직스로부터 450억원대의 채권을 받지 못한 데서 시작했다.

두 해운사는 중첩된 용선 계약으로 상호 채권·채무 관계에 놓여 있었다. TPC코리아 입장에서는 받을 돈이 더 많았지만, 도리어 보유선박·유동자산 등이 가압류 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삼선로직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채권은 동결되고 채무만 남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재무평점 산정은 필연적으로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신용위험평가에서 구조조정 대상이 11개(C·D등급) 업체에 그쳐 정책 효율성 역시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소수의 C·D등급 기업 가운데서도 워크아웃·법정관리에 돌입한 곳은 한 군데도 없는 실정이다.

경영정상화계획이행약정(MOU)을 통해 적극적인 회생 작업을 유도한 건설업계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대형사 위주 지원책, 구조조정 취지 '희석'

정부가 내놓은 대형사 중심의 지원책 역시 해운업 위기 타개의 묘수라 보기에는 한계가 많다. 캠코를 통한 선박펀드형 지원책은 일차 대상(17척)이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대형 선사에 국한돼 있다. 잠재력을 갖춘 중견 기업들에 대한 지원은 향후 추진 여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상황.

특히 중소 해운사의 경우 회사채 발행, 금융권 차입 등이 사실상 불가능해 정책적 지원이 없이는 유동성 압박 해소를 기대하기 힘들다.

업계 관계자는 "B등급 해운사들의 법정관리 신청이 잇따르면서 은행들이 동일등급 기업에 대한 차입을 줄이고 있다"며 "자신들이 평가를 하고도 이후 결과가 나빠지자 중소 해운사 전체에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스스로 결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용선 사슬 하에서 소형 해운사 한 곳의 부실이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사 중심의 지원책 역시 업계 전체적으로 큰 도움이 안된다"며 "잠재력을 갖춘 기업을 살리고 가망 없는 업체를 과감히 퇴출하는 구조조정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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