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초식남·건어물녀 된 까닭은?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 2009.07.29 09:08

[머니위크 커버스토리]비싸게팔자/ ②이단아,초식남과 건어물녀

편집자주 | 자신의 가치를 100% 인정받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원한 화두다. 물품에서 노동력까지. 매일 수많은 경쟁 대상들 사이에서 비교되고 평가받는다. 1등 신부감 되기, 외모 경쟁력 높이기, 연봉 높이기, 경력관리 등 자신의 가치를 높여 줄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해 중고물품에서 고가 브랜드 마케팅까지 '비싸게 파는 비법'을 취재했다.

훤칠한 키에 깨끗한 피부를 가진 꽃미남 A씨(37). 남부러울 데 없는 외모에다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직장도 가졌다. '킹카'라고 불릴 만큼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지만 아직까지 솔로다.

A씨는 외모를 가꾸는 등 자신을 투자하는 데 아끼지 않는다. 뽀얀 피부는 다름 아닌 여성용 나이트 수분 크림 덕택. 그는 독한 남성용 화장품 대신 미백이나 수분 등 고기능을 갖춘 여성용 화장품을 사용한다. 일주일에 두번 마사지하는 것을 결코 빠뜨리는 법이 없다. 가끔 피부가 나빠 보일 때 남성용 색조화장품으로 피부를 커버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남자들이 쇼핑을 싫어한다고? 천만에! 그에겐 쇼핑이 즐거운 취미다. 옷 하나를 고르더라도 여자들보다 더 꼼꼼하게 살피고, 아이쇼핑을 수시로 즐긴다. 심지어는 패션잡지를 통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차림을 연구하기도 한다. 남들이 패션모델이라고 부를 만큼 멋진 패션 감각을 갖춘 데는 이 같은 남모를 노력이 있었다.

평소에 요리를 자주 하진 않지만, 주말 같은 때 취미삼아 요리책을 뒤진다. 가끔 마음에 드는 요리가 있으면 마트로 달려가 손수 장을 본다. 손 솜씨가 있어 여자들보다 더 맛깔스럽게 요리하고 예쁘게 상도 차릴 수 있다.

회사 일도 열심이다. 완벽주의자적인 기질을 가진 A씨는 회사에서도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이쯤 되면 완벽한 조건처럼 보이는 A씨. 적지 않은 여성들이 그에게 대시를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한 것은 독신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여러 차례 연애를 했지만, 소극적인 성격 탓에 쉽게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일에 쫓겨 미적미적 대다보면 어느새 여자친구들이 떠나가 버렸다. A씨와 연애를 했던 여자들은 대부분 A씨가 너무 소극적인 탓에 자신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결국 기다리다가 지쳐 떠나게 됐다고 털어놨다.

A씨는 언젠가는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몇번의 이별로 마음의 상처를 받다보니 어느 순간 연애에 대해 위축된 감정을 갖게 됐다. 지금은 연애로 인한 감정소모가 아깝다는 생각까지 한다.

더군다나 나날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회사 일에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완벽주의자적인 A씨는 회사 일을 대충하고는 만족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연애와 결혼에 무감각한 남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회사에선 멋진 그녀, 집에선 푹 퍼진 아줌마?

회사 일에 똑 부러지고 패션 감각도 남다른 B씨(35). 능력 있고 멋스러운 커리어우먼이지만, 역시나 아직까지 솔로다.

멋스러운 그녀도 집에만 오면 푹 퍼진 동네 아줌마로 변신한다. 집에 오자마자 화장을 다 지우고 털털한 옷차림으로 동네 슈퍼에 나선다.

주말에는 일주일 동안 피로를 푸느라 하루 종일 잠만 자거나 겨우 일어나 하는 일이라곤 TV 보는 일이 전부다.

30대 중반에 들어서니 대부분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거나 애인이 생겨 주말 약속을 잡아본지 오래다. 전화해서 만날 사람도 없다. 30대 초반만 해도 소개팅이나 맞선이 들어온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조차 뜸하다.

어쩌다 가끔 맞선을 보러 나가면 40대 아저씨 모습을 하고 있는 남자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자신도 30대 중반의 '아줌마' 나이가 다 되었지만, '아저씨' 스타일은 싫다.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남자는 20대 후반, 많아야 30대 초반이다. 비록 물리적인 나이는 먹었지만 정신적인 나이와 눈높이는 20대에서 더 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보니 B씨는 어느새 연애가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다.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고, 또 어쩌다 마음에 들면 애인이 있거나 결혼을 해버린 경우가 허다하다보니 연애에 마음을 비웠다.

그녀가 심심할 때 주로 하는 일은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보는 일. 그것이 주말에 즐기는 유일한 취미다.

◆초식남, 건어물녀가 시대적인 대세?

요즘 A씨와 같은 초식남, B씨와 같은 건어물녀가 화두다. 초식남이란 초식동물처럼 풀만 뜯어먹을 것 같은 여리고 온순한 남자,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성적인 취향을 지닌 남자를 말한다. 가부장적인 남성을 지칭하는 '마초'와 반대되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대로 건어물녀는 맥주를 마시면서 안주로 오징어와 같은 건어물을 즐겨 먹는다는 뜻과 연애세포가 건어물처럼 말랐다는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일에는 열심이지만, 연애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연애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소극적이고 서툴다고 할 수 있다.

일본 30대 미혼남성의 74%가 스스로를 초식남이라고 생각하다는 통계가 있듯, 최근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온라인상에서 초식남과 건어물녀 테스트도 유행이다. 초식남 테스트에는 '격투기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여자친구는 많아도 애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건어물녀 테스트에는 '휴일에는 노메이크업 & 노브라' '냄비에 직접 대고 라면을 먹는다' 등이 들어 있다.

◆그들이 초식남, 건어물녀가 된 까닭은?

결혼과 연애에 대한 전문가들은 최근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늘어나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들고 있다.

첫째, 요즘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가정의 안위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기성세대 즉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 모델이 퇴화되면서 '나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살겠다'는 의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젊어서 죽도록 일하고, 경제적인 여유를 가질 때쯤엔 이미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어버린 그런 삶을 살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남자답다, 여자답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에 과감해질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둘째, 고도성장기시대에는 사회적으로 많은 기회가 주어졌고 남자들에게 '야망'과 '쟁취'를 강조할 수 있었다. 이 시절 남자들에게 사랑은 적극적으로 나서면 '쟁취'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여자들은 반대로 잘나가는 남자들에게 선택되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막을 내린 지금 시점에는 사회적으로 야망을 품고 쟁취할 수 있는 기회나 대상이 거의 없어졌고, 그 결과 요즘 세대의 남자들은 경쟁의식이 보다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사랑을 쟁취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다보니 소극적인 경향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취업대란과 계속되는 경기불황 속에서 일찍부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젊은 세대들은 일에 지쳐 사랑에 전념할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졌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주변 현실이 녹록치 않은 요즘 세대들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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