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세상]'스폰서 문화'에 무너진 검찰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 2009.07.16 09:57

대형 법조비리 사건 네 차례 수사하면서 구태 청산 못해

"법조계의 오랜 병폐인 '스폰서 문화'에 검찰이 무너졌다."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고 있는 한 검사의 말이다. '스폰서 문화'란 법조인이 업자나 브로커의 청탁을 받고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 동료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속칭 '관선변호' 등을 해주고 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 등을 받는 법조비리의 한 유형이다.

법조인 특성상 아무나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특정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일부에선 스폰서를 인수인계하는 '전통'도 있었다.

법원의 스폰서가 법조브로커가 대부분인 것에 비해 검찰은 건설업체 관계자 등 '업자'들이 주로 많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알려진 법조계의 '스폰서 문화'는 비단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과거 네 차례의 대형 법조비리 사건 중 법원은 세 차례 '스폰서 문화'로 인해 호된 시련기를 보낸 바 있다. 2006년 8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법조브로커 김흥수씨로부터 사건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조모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구속기소했다.

또 김모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박모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 송모 전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사건을 통해 법조브로커의 청탁을 받은 판·검사가 사건을 담당한 동료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속칭 '관선변호', 법조인이 장기간 브로커나 업자로부터 향응을 받는 '스폰서 문화'의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은 법조브로커 명단을 작성, 브로커 접촉을 차단하도록 하겠다는 대응책도 내놨다. 검찰 수사를 통해 '스폰서 문화'가 알려지면서 법원은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로 인해 법원 내부로부터 자성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판사들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기수별 대표법관회의를 통해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스폰서 문화 등 법조비리에 대한 근절책을 주문했다.

대부분 선배들의 스폰서 문화 행태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와 함께 유흥업소 등 부적절한 장소에서 변호사 등을 만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는 쓴 소리도 있었다.

또 선배 판사들이 명절과 휴가 때 돈을 받고 골프 자리에 초대받는 것도 엄연한 청탁 명목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도 촉구했다. 이 사건은 당시 '영장 갈등'으로 법원과 냉전기를 보내고 있었던 검찰에겐 큰 호재였다.


이보다 훨씬 앞서 판사들이 처음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이다. 판사출신 이모 변호사가 브로커를 고용해 1년여 만에 17억원대의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의정부지원 판사 15명이 변호사 14명으로부터 명절 때 떡값과 휴가비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 원씩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대법원은 판사들을 대거 정직 또는 경고 처분하는 등 중징계 했고 그 후 판사 8명이 사표를 냈다. 또 사태의 책임을 지고 당시 의정부지원장도 법원을 떠났다.

사법사상 처음으로 금품수수 비리와 관련해 현직 판사가 중징계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에 대해 금품수수가 구체적 직무와 관련이 없고 인사치레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기소유예처분을 내렸다.

뒤를 이어 1999년 1월 대전법조비리가 터졌다. 검사출신 이모 변호사가 법원과 검찰 전·현직 간부, 일반직원 등에게 소개비와 알선료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결국 이 변호사는 형사사건 소개 대가로 수임료의 일부를 지급키로 약속한 사실이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해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후 스폰서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 대형 법조브로커 사건에 법조계가 또 다시 술렁였다. 2007년 11월 말 브로커 윤상림 사건이 터진 것. 검찰은 5개월의 수사 끝에 39건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 6차례에 걸쳐 윤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또 전직 검·경 고위간부와 대기업회장 1명 등을 함께 기소했다.

이렇듯 검찰은 네 차례 법조비리 사건을 수사했지만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조직 내 스폰서 문화를 근절하는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 검찰도 스폰서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지만 법조비리로부터 정작 자신들을 경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결국 검찰총장 후보자가 내정된 지 23일 만에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잔재가 검찰의 미래를 구속한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네 남편이 나 사랑한대" 친구의 말…두 달 만에 끝난 '불같은' 사랑 [이혼챗봇]
  2. 2 '6만원→1만6천원' 주가 뚝…잘나가던 이 회사에 무슨 일이
  3. 3 "바닥엔 바퀴벌레 수천마리…죽은 개들 쏟아져" 가정집서 무슨 일이
  4. 4 노동교화형은 커녕…'신유빈과 셀카' 북한 탁구 선수들 '깜짝근황'
  5. 5 "곽튜브가 친구 물건 훔쳐" 학폭 이유 반전(?)…동창 폭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