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털려고 평수 수술합니다"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 2009.07.02 07:25

[기획-한계 다다른 지방 미분양]②대구·부산

↑ 부산 금정구 장전동 아파트 부지. 2006년 분양실적 저조로 사업이 중단돼 3년 째 방치된 상태다.
"여기 저기 미분양아파트 천지인데 여다 또 지아가 사업이 되겠능교?"

지난달 29일 오후 부산 금정구 장전동. 잡초만 무성한 황무지를 보며 동네 주민이 혀를 끌끌 찬다. 이곳은 당초 지상 22층짜리 아파트 6개 동을 건립하려던 주택 사업장이다.

A건설은 지난 2006년 일반분양을 실시했지만 계약률이 저조하자 계약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공사를 중단했다. 현재는 주택형 변경 등 재설계 작업 중이다.

건설사들이 부산·대구·울산·포항 등 영남 일대에서 미분양아파트 '새판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 초기계약률이 너무 낮아 사업을 잠정 중단 또는 연기했던 사업장의 설계를 새롭게 바꾸는 등 재추진 작업이 한창인 것.

대부분 2∼3년 전 중대형 중심으로 구성했던 아파트 면적을 실수요층이 두터운 중소형으로 변경하고 있다. 계약자들에게 인근의 다른 아파트를 배정하고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는 건설사도 있다.

◇"이대로는 승산없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부산·대구 등 영남지역은 전국에서 미분양아파트가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미분양 적체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전체 미분양아파트(부산 1만4790가구, 대구 2만691가구)의 1/3 이상이 준공 후 미분양(부산 5470가구, 대구 8132가구)으로 남아 있다.

특히 전용면적 85㎡ 초과 중대형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팔리지 않는 '골칫덩이'다. 경기침체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분양가·관리비 부담이 큰 중대형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 2009년 4월 기준 미분양주택 현황 <출처: 국토해양부 통계자료>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초 중대형으로 구성했던 아파트 설계를 중소형으로 바꾸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부산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B건설은 계약 직후 계약자들에게 계약금을 돌려줬다. 초기계약률이 10%도 안되는데 아파트 공사와 분양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185∼258㎡ 등 중대형 중심의 기존 설계를 중소형으로 바꿔 조만간 새롭게 분양할 계획이다.

B사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선 중소형보다 수익률이 높은 중대형을 많이 짓는 것이 유리하지만 역시 시장의 흐름은 거스를 수가 없다"며 "그나마 움직임이 있는 중소형 수요를 집중 공략하는 것이 미분양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C건설은 올 상반기로 잡혔던 부산 재개발아파트 일반분양 일정을 오는 9월로 미뤘다. 가구별 면적을 재구성하기 위해서다. 조합과 협의를 거쳐 당초 132㎡ 주택형을 85㎡로 바꿔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계약자에게 사업장 인근의 다른 아파트를 배정하고 사업을 원점으로 되돌린 사례도 있다. D건설은 경북 포항 양덕동에서 분양한 2개 사업장 중 1곳의 공사를 잠정 중단했다. 중대형으로 이뤄진 1차 아파트의 계약률이 저조하자 계약자들과 2차 아파트 로열층을 배정하기로 약속하고 사업장 1곳을 축소했다.

↑ 대구 수성구 아파트 건설 현장. 미분양 아파트가 4500가구에 이르지만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얽히고 설킨 사업… 포기도 쉽지 않아=건설사들이 모델하우스 건립, 순위별 청약, 당첨자 계약 등까지 진행했던 기존 분양사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그만큼 영남 분양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 분양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해답은 얽히고설킨 사업구조에 있다. 국내 민간택지 주택사업은 대부분 공사를 맡은 건설사가 개발업자인 시행사의 지급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금융권의 돈을 빌려 진행된다. 분양시장 상황이 안 좋아 건설사가 사업을 포기하고 싶어도 시행사, 금융권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손을 뗄 수가 없다.

대구·부산 일대에 미분양 사업장이 많은 E건설 관계자는 "단순히 시공권만 포기할 수 있는 구조라면 아마도 지방 사업장 여러 곳에서 철수 했을 것"이라며 "토지매입 단계부터 지자체 인허가, 금융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모든 과정이 연결되는 만큼 사업을 포기하는 순간 금전적 손해 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신용 등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사업 포기에 합의하더라도 부지가 팔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한다. 영남의 한 지역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을 포기하고 싶어도 땅을 사겠다는 매수자 찾기가 어렵다"며 "공공기관에 땅을 넘기는 것도 알아봤지만 가격 산정 기준이 터무니없이 낮아 손해가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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