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사교육대책, 어디로 가나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 2009.06.30 07:57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잇따라 사교육비 문제를 지적하면서 지난 3일 발표된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대책도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당정청 협의까지 거친 종합대책을 발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손을 대는 것에 대해 교육계 안팎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교육정책이 뚜렷한 원칙 없이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해묵은 비판도 제기된다.

◇질책이냐 독려냐 = 지난 24일 이 대통령이 안병만 교과부 장관을 질책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교과부 공무원 중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인 이들이 많았다. 전날 국무회의 분위기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질책으로 보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의아함은 이 대통령의 다음날 발언으로도 설득력을 얻었다. 이 대통령은 시도교육감 오찬 간담회에 앞서 안 장관에게 "확인되지 않은 언론보도가 나갔다.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고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질책'이 정설로 굳어져 있지만 온전한 질책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풀려진 면이 있다는 게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대통령이 안 장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만족스러운 수준의 답변이 나오지 않아 사교육비 경감대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질책과 독려의 중간 정도 뉘앙스였다"며 "서민들이 사교육비가 정말 줄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도록 확실히 챙겨달라는 당부였는데 이것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전달자의 자의적인 해석이 가미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임이냐 불신임이냐 = 그러나 질책이 됐든, 독려가 됐든 정치권과 교육계에 미친 파장은 컸다. 당장 한나라당 쇄신안과 맞물려 안병만 장관과 정진곤 청와대 교육과학문화 수석의 교체설에 힘이 실렸다. 폐기된 줄 알았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사교육 대책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이 주도한 '사교육과의 전쟁' 토론회를 통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당정청 협의를 거쳐 이미 '교통정리'가 끝난 사교육비 경감대책이 곽 위원장과 정 의원 등 친이 직계 소장파에 의해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된 배경에는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조문정국 이후 수도권 30~40대의 민심을 잡기에 사교육비 경감만 한 게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국정운영 기조로 선택된 친서민, 중도실용론과도 맥을 같이 한다.


미래기획위원회의 사교육대책 마련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곽 위원장과 정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안 장관을 질책했다고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라며 "사교육비 감소를 통한 중산층 복원을 성과로 해서 내년 선거를 치르겠다는 큰 틀의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과부가 정책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성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대통령의 발언을 교과부에 대한 불신으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기존 사교육대책의 전면수정을 염두에 뒀다기보다 국민들의 체감도를 높일 정도의 보완책 마련 지시 정도로 보는 게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쟁이냐 교육이냐 = 대통령 발언의 진위야 어찌됐든 곽승준 위원장과 정두언 의원에게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곧 마련될 당정청 실무회의에 두 사람 모두 참석 대상이다. 그러나 떠들썩한 잔치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먹을 음식은 별로 없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6일 제안한 '사교육과의 전쟁' 7대 긴급대책 가운데 주목할 만한 내용은 내신 절대평가 도입, 학원 교습시간 제한 전국 단일화 정도다. 나머지는 지난 3일 발표한 종합대책에 거의 반영이 돼 있다.

내신 정책의 경우 말처럼 문제가 간단치 않다. 9등급 상대평가를 다시 5등급 절대평가로 환원할 경우 '내신 부풀리기'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와 연계할 경우 고교등급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신이 대입 전형수단 역할을 못하면 수능과 대학별고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대학들이 본고사 실시를 선언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교과부 공무원들이 내신 절대평가에 고개를 젓는 것은 이런 우여곡절을 이전 정부에서 모두 겪어봤기 때문이다. 내신 수술이 도마 위에 오른 만큼 검토야 불가피하겠지만 획기적인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는 드물다. 다만 교과부는 학원 교습시간 제한의 경우 단속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제화에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사교육대책이 재논의 되는 과정을 곰곰이 뜯어보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순수한 목적 외에 여당 내 일부 세력들의 권력투쟁 성격도 분명히 읽을 수 있다"며 "철학도, 원칙도 없이 아이들의 미래조차 정치적, 정략적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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