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센터 싸가지' 엄마의 편지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 2009.06.26 16:57
"치료가 끝나면 아이의 머리털도 다시 자라겠지요. 한 가닥 한 가닥 자라는 머리카락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이 한 가닥은 김 모 선생님의 점심값이며, 이 한 가닥은 이모 선생님의 점심값이라는 것을, 그리고 더 큰 그분들의 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복지부와 함께하는 금요일의 점심'이 26일 일산 국립암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대강당을 빼곡히 메운 400여명의 눈시울은 동시에 붉어졌다.

올해로 만 2살 된 윤건이 엄마는 임신 7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단상에 올라섰다. 윤건이는 이날 복지부와 암센터 직원들의 후원을 받게 된 2명의 환아 중 한 명. 엄마가 직접 감사 인사를 전하려 400여명 사람들 앞에 섰다.

윤건이 엄마는 "베푸는 것에 인색한 저였기에 이렇게 받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도 했다"며 "하지만 여러분의 숭고한 마음은 제 아이가 아프고 어렵다는 핑계로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다"고 말했다.

올해 2살인 윤건이는 생후 6개월에 섬유육종 진단을 받고 1년 반째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부산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윤건이 부모는 전 재산을 처분해 치료비를 마련했다. 그러나 치료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머니는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한다. 떼어내지 못한 종양이 윤건이의 호흡중추가 있는 뇌간을 누르고 있어 언제 호흡을 멈출지 몰라서다.

윤건이 엄마는 이날 감사편지를 통해 이 같은 애끓는 모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다음은 이날 윤건이 엄마가 밝힌 감사편지 전문.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저는 올해 만 두 살 난 남자 아이의 엄마이고 저희 아이는 섬유육종이라는 소아암을 앓고 있으며 현재 양성자치료와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그야말로 암적인 세포들과 힘써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이가 많이 날카로운 성격을 보이곤 합니다. 심지어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고 어떤 분은 '암싸'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뜻은 '암센터 싸가지'라고 하네요.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부족하고 두서없는 글이겠지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여러분을 위해 짧은 글, 큰감사의 마음을 담아 몇 자 적어 올립니다.

작년 어느 날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때문에 저희 가정은 웃을 일은 줄고 울 일은 늘어만 갔습니다. 처음에는 이 시련이 3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래 3개월이다, 아가야 딱 3개월만 아프고 아프지 말아라."

그러다 6개월을 넘기고 내년에는, 제발 내년에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함께 하기를 기도하며 힘든 시간을 인내하였습니다. 그러다 1년을 넘기며 그 말로만 듣던 이중, 삼중고를 몸소 실감하게 되었답니다.

치료 1년이 지난 지금 아이의 병은 다 나은 듯 하더니 다시 재발했고 지금까지 치료해 오면서 이미 바닥을 드러낸 저희 형편을 돌아보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언젠가, 누구에게선가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암은 돈만 있으면 치료가 되는 병이라더라.'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여직 뭘 하고 살았길래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열심히 산다고 살아온 시간들은 그저 내 착각이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들이 스치는 순간, 아이가 아픈 것 마저 제 탓인 것 같아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어 아이의 눈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듯 부모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저희를 대신하여 오늘 우리아이에게는 더 많은 엄마와 아빠가 찾아와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심값을 아껴서 후원금을 마련해주신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 감동받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겠지요. 어릴 적 학교에서 팔던 크리스마스 씰 조차도 아까워 사기 싫어하던 저였고, 해마다 날아오는 적십자 회비 고지서를 보고도 무시했던 저였습니다. 베푸는 것에 인색한 저였기에 이렇게 받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마련해 주신 숭고한 마음들을 제 아이가 아프다는 핑계로, 저희의 어려운 형편을 핑계로 체면도 버리고 부끄러움도 버리고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가 깨끗이 다 나아서 나중에 오늘의 일을 물어오고, 아니 물어오지 않는다 해도 제가 먼저 가르치겠습니다. 너에겐 지금의 엄마아빠 보다도 더 좋은 엄마아빠가 많이 있었노라고. 니가 이렇게 씩씩하게 자랄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마음들이 있었기에 니가 낳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저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치료가 끝나면 아이의 머리털이 다시 자랄 것이고 한 가닥 한 가닥 자라날 때마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이 한 가닥은 김 모 선생님의 점심값이며, 이 한 가닥은 이 모 선생님의 점심값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분들의 마음만큼은 점심값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어휘력 풍부하기로 유명한 우리말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 말밖엔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꼭 나을 겁니다. 여기 계신 모든 환우님들 모두 꼭 나을 겁니다.
그것으로 고마우신 분들께 보답하겠습니다.

2009년 6월26일 윤건 엄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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