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할머니' 생명력에 증폭되는 논란들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 2009.06.25 11:33
국내 첫 존엄사 시행의 주인공이 된 김모 할머니(77)가 23일 인공호흡기를 뗀 지 만 48시간이 넘도록 자발적으로 호흡을 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어 당사자인 세브란스병원과 환자 보호자 측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할머니가 살아계신 것 자체에는 모두 기뻐하지만 할머니가 존엄사 대상이 아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사망이 임박하지 않은 환자를 잘못 판단해 존엄사를 시행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25일 10시 30분 현재 김 할머니는 수축기/이완기 혈압 117/82㎜Hg, 호흡 분당 23회, 맥박 분당 90회, 산소포화도 93%로 생존에 문제없는 생체지표를 보이고 있다. 산소포화도가 일시적으로 90%까지 떨어졌었지만 다시 회복됐다는 것이 병원 측의 설명이다.

김 할머니는 현재 하루에 세 번씩 호스를 통해 유동식(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갈아만든 음식)과 수액주사, 기도 노폐물 제거, 응급의약품 등을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과 보호자 측의 의사에 따라 인공호흡기 재삽입이나 심폐소생술, 신장투석 같은 연명치료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럴 경우 환자는 기도를 통한 폐렴 결핵 등 감염이나 욕창, 패혈증, 심장마비, 뇌졸중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장기간 생존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뇌간기능에서 호흡기능이 일부 살아남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에도 자발적인 호흡이 계속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인지기능은 손상됐지만 자극에 몸을 움츠리는 정도의 반응은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특히 "2~4주간 가래로 인한 폐렴만 막는다면 안정화단계에 접어들어 장기생존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법원이 환자 상태를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법원이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활용한 외부 의료기관 감정자의 판정결과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판결 당시 대법원은 존엄사 대상이 되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를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고 △중요 생체기능이 회복 불가하며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경우로 규정했다. 하지만 환자가 만 이틀 넘게 생존하며 마지막 조건을 잘못 판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병원 측도 "존엄사 시행 판단에는 주치의 의견이 가장 중시돼야 한다"며 대법원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나섰다.


논란이 일자 김 할머니 보호자 측은 병원의 '과잉진료'로 대응하고 있다. 호흡기 없이도 괜찮은 할머니에게 1년 반 넘게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것 자체가 과잉진료라는 주장이다.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 위자료를 추가로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관련, 보호자 측은 김 할머니가 지난해 2월 폐암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던 중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며 지난 3월에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는 환자가 저산소증을 보이면 당연히 해야하는 조치"라며 "호흡기 부착 중에도 산소포화도를 낮추는 방식의 시도를 했었는데 경고음이 울리는 등 떼면 안되는 것으로 나와 계속 유지시킨 것"이라고 답했다. 적은 가능성을 위해 환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위험을 감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논란이 계속되자 보다 명확한 존엄사 판단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자의 연명치료중단 의사 뿐 아니라 사망단계 진입 여부를 보다 면밀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할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는 존엄사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 '연명치료중지관련지침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고 오는 9월 경 지침을 발표할 계획이다.

좌훈정 의협 대변인은 "내부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 8월 공청회를 거친 뒤 9월 존엄사 관련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이번 사례를 모델로 병원 모두가 통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명치료 중단은 지난 달 대법원이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김 할머니 자녀들이 무의미한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김씨로부터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며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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