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비정규직 해법, "별 소용 없어요"

"현재의 비정규직법은 근로자도 기업도 원치 않는 법입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기업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정부가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일시적인 지원이라면 실효성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여야 3당과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22일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를 열어 이달 말까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마련키로 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의 효력을 2~4년 늦추는 유예안을 내놓은 반면 민주당은 법은 그대로 시행하되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한나라당의 유예안도 임시방편이지만 민주당이 내놓은 '현행 법 유지 및 정규직 전환 지원'은 더욱 더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업이 사용기간이 2년을 넘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비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기업은 임금을 올려주는 것 외에도 복리후생비, 교육훈련비 등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각종 협회비와 국민연금·산재보험료 등 이른바 준조세 부담도 높아진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약 30% 정도 부담이 느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제적 부담 외에도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도 없어 불황기 때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도 크다"고 말했다. 현행 비정규직법을 그대로 시행한다면 어쩔 수 없이 사용기간 2년이 넘은 비정규직은 해고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주장해온 것도 이 같은 비정규직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비정규직법 시행 만 2년이 되는 다음 달이 되더라도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현실을 감안했다.

실제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24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늘리면 82.8%의 기업이 비정규직을 계속 고용하겠다고 응답했다. 반면 사용기간이 연장되지 않으면 55.3%의 기업이 비정규직을 전원 또는 절반 이상 해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정규직 전환 지원금 제도도 큰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게 기업 입장이다. 정부와 여야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에서 정규직 전환 지원금으로 1185억원을 책정했다. 민주당과 노동계는 여기서 더 나아가 연간 1조2000억원씩 3년간 총 3조6000억원을 정규직 전환 지원금에 쓰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1인당 50만원을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각종 부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한시적인 지원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영세 기업들 사이에서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은 비정규직 일부나마 정규직으로 전환할 여유와 계획이 있던 대기업과 중견기업에만 좋은 제도'라는 불평이 나온다.

지원할 수 있는 정부 예산에 한계도 있지만 불황기에 세금을 더 걷기도 어려워 일반회계가 아닌 고용보험으로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 부담으로 운영되는 고용보험에서 정규직 지원금이 지원되면 간접적으로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며 "또 경제위기로 실업급여 지출과 고용유지지원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고용보험기금 재정 악화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경총은 "야당에서 주장하는 연간 지원금 1조2000억원은 현재 고용보험에서 고용안정 및 직업훈련 지원 등에 쓰이는 전체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