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중소기업의 환율 딜레마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 2009.06.23 07:10
"지난 해에는 원/달러 환율이 너무 올라 걱정이었는데, 올해는 떨어져 고민이 큽니다. 환율이 안정되는 게 아니라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적자를 넘어 존폐위기에 몰리는 기업이 상당할 듯 합니다."

중소기업 A사 임원의 얘기다. 이 업체는 조명장비 생산업체로, 일본에서 자재를 수입해 조립한 후 다시 수출한다. 사업이 그런 대로 진척되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A사의 사정은 이렇다. 달러당 1000원 미만이던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9월초 1100원대를 돌파하면서 원자재 수입비용이 부담스러워졌다. 환율이 다시 안정될 것을 예상해 수입을 최대한 늦추면서 국내 재고를 활용했다. 수출가격이 좋아져 수익성도 개선됐다.

문제는 그 뒤였다. 2개월간 원자재를 들여오지 않아 11월초 재고가 바닥났고, 뒤늦게 수입에 나섰다. 환율은 이미 1400원대를 넘은 상황이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재고를 채워놓고 한숨돌리자 수출단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환율이 급속도로 하락한 탓에 원자재는 달러당 1400원에 수입하고, 제품은 1200원에 수출하는 역마진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A사 임원은 "이런 상황을 우려해 통화옵션 상품에 가입하려 했으나 키코(KIKO) 사태 여파로 받아주는 은행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계에서도 발생했다고 한다. 환율문제에 판매부진까지 겹쳐 상당수 업체가 폐업했고, 살아남은 곳도 현금확보를 위해 원가 이하 덤핑판매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 후유증은 일부 중소기업에 국한된 현상일 수 있다. 키코 피해 기업, 혹은 엔화대출 기업들을 고려하면 환율은 보다 낮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시각도 있다.

문제는 환율 급등락으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A사는 환율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거래은행을 찾았으나 자금지원은 물론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환율 충격은 최소한 중소기업에는 아직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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