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9.06.25 07:10

[머니위크]위기 극복 키워드는 '가족애'

지난 6월15일 애경그룹은 이례적으로 유통부문 매출에 관한 보도자료를 냈다. 애경백화점과 삼성프라자, 삼성몰로 나뉜 유통 브랜드를 AK라는 BI로 통합한 이후 100일 만에 매출이 353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발표는 그간 꾸준히 제기됐던 삼성프라자의 실적 둔화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애경그룹이 유통부분의 매출을 강조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지금은 외부 노출을 자제하고 있는 채형석 총괄부회장의 경영능력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은 2002년 어머니인 장영신 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실질적인 경영을 해왔으며 2006년 이후 삼성프라자 인수와 제주항공 설립 등 그룹의 굵직한 경영현안을 주도해 왔다.

2007년 초 삼성플라자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유통부문 3강에 진입하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던 터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시점에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경영능력에 상처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말 채형석 부회장은 횡령혐의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올 초 보석으로 출소했지만 4월 말 결국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따라서 여전히 그룹 전반에 나서기에 부담스런 상황이다.

실질 경영권은 여전히 채형석 부회장에게 있지만 그룹의 대표 이미지는 차남 채동석 부회장이 넘겨받은 형국이다. 채동석 부회장은 유통부분을 담당하며 채형석 부회장을 지원해 왔다.

물론 애경그룹은 보석 이후 곧바로 채형석 회장의 경영복귀가 이어졌으며 공식적으로 그룹의 최고 책임자라고 못박고 있다. 구속당시 경영공백도 부문으로 나뉜 시스템 덕에 위기를 잘 넘겼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채동석 부회장은 형님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채동석 부회장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항상 형님과 같은 방을 쓸 정도로 우애가 깊었는데, (내가) 잘 보필하지 못해 불미스런 일이 생겼고 가슴이 아프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다.

사실 채동석 부회장의 눈물어린 형제애에는 애경그룹의 남다른 가족사가 숨어있다.

◆가슴 저린 애경의 가족사

애경그룹은 장영신 회장을 중심으로 가족경영을 해오고 있다.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애경그룹의 대표로 활동했고, 차남인 채동석 부회장은 애경유통을 책임졌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의 전 남편인 삼남 채승석 사장은 애경개발을 이끌고 있다.

가족경영에는 딸과 사위도 예외가 아니다. 딸 채은정 전무와 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은 생활·항공분야에서 부부애를 과시하며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 같은 애경그룹의 역사는 일찍 남편을 잃은 장 회장의 '아픔'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애경유지 창업주인 고 채몽인 사장은 1970년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 당시 장 회장의 나이는 불과 35세. 가정주부로 살았던 장 회장이 경영에 대해 까막눈이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부 경영학자들은 장 회장을 일컬어 '경영의 고아'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그녀의 경영참여를 말렸다고 한다. 유일하게 그녀의 편이 되어 준 사람은 오직 친정어머니뿐이었다. 네명의 자녀는 친정어머니의 지원 덕분에 무사히 자랄 수 있었다.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봤던 자녀들에게 남다른 가족사랑이 싹트지 않았을까. 애경그룹의 가족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애경이 위기 속에서도 잘 버티는 이유를 '가족애'에서 찾기도 한다.


◆가족경영 중심엔 '열정 DNA'

장 회장은 매출 49억원의 비누회사를 재계순위 50위권의 대기업으로 이끌었다. 특유의 억척스러움이 국내 여성 1호 CEO라는 감투까지 씌웠다.

지난 12일에는 모교인 미국 체스넛힐대학 총동창회에서 동양인 중 처음으로 공로상을 받았다. '남성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여성 경영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장 회장의 억척스러움은 미국 유학시절에서 드러난다. 미국 체스넛힐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장 회장은 '장학금을 받기위해 누워서 잠을 잔 적이 없을 정도'라고 회고할 정도다. 경영 참여 이후에는 부족한 경영지식을 충당하기 위해 경리학원을 다니며 기초지식을 다질 정도로 열의에 가득 찼다.

이 같은 '열정 DNA'가 자녀에게도 고스란히 대물림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채형석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오른 뒤 50년간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해 온 그룹을 벗어나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한 것이 좋은 예다.

채 부회장은 유통부문의 사업 확장과 부동산 개발, 항공업 등을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정했다. 어머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안정에서 도전으로 그룹의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뿐이다.

◆새로운 도전, 정면 돌파 승부수

채형석 부회장이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면 채동석 부회장이 확장한 사업의 결실을 이룰 차례다.

이에 대해 채동석 부회장은 구심점을 잃은 어려움 속에서도 '유통만큼은 목표를 이루겠다'며 '열정 DNA'를 자극하고 있다. 2013년까지 백화점 7개점(3조3000억원)과 면세점 3개점(5000억원)을 운영해 3조8000억원 매출이라는 중장기적 목표까지 설정했다.

단기적으로는 4월에 오픈한 AK플라자 4호점 평택점이 올해 매출 900억~1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삼성프라자가 신판교 입주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해외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애경그룹은 중국 소주와 백화점과 복합쇼핑몰 부지를 두고 논의를 진행 중이다. 3년 내 중국 입성이 목표다.

그룹 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제주항공과의 연계 사업도 진행하기 시작했다. 5월부터 제주항공의 인천-오사카, 인천-북큐슈, 인천-방콕 노선에서 AK면세점 이용이 가능해졌다.

물론 제주항공 운영도 정면 돌파 하겠다는 판단이다. 다행히 안용찬 부회장이 이끄는 제주항공은 본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월 말 현재 국내선 시장점유율을 두자리 수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매출도 545억원을 기록했다. 여전히 적자가 계속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적자폭도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애경의 유동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9개 그룹에 포함되면서 애경그룹은 자산 매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나 보유 부동산 매각 등 사업구조를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버지-어머니-형에 이어 애경그룹 가족경영의 4번 타자로 등장한 채동석 부회장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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