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합병과 파트너들의 침묵

더벨 문병선 기자 | 2009.06.18 10:16

[thebell note]

이 기사는 06월17일(08:33)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가장 토론이 많을 것 같고 반대 의견이 있다면 난상 토론이 벌어질 것만 같은 회사가 로펌이지만 실상 토론 없이 수직적 의사결정을 곧잘 해내 버리는 회사 역시 로펌이다.

파트너 전원이 무한책임을 감당하면서도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파트너 변호사가 부지기수인 게 국내 로펌의 현실이다.

창업자 및 경영자(대표 변호사)와 영향력 있는 일부 파트너 변호사 몇몇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인데, 로펌간 합병이 과거 어느 때보다 무성한 요즘 이 같은 로펌의 의사결정 구조는 자칫 로펌을 망칠 수도 있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한 변호사는 "전원 합의체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최근 합병했던 일부 로펌 역시 의사결정을 이미 해 놓은 뒤 설득해 나가는 방식이지 합병에 반대하는 변호사가 있다고 해서 결정이 뒤엎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이뤄진 로펌간 8건의 주요 합병 사례 중 구성원(파트너) 변호사의 만장일치로 가결된 합병 사례는 절반을 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통합된 로펌 8곳의 변호사(약 7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들은 사실상 합병에 반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다보니 운이 좋아 합병이 성공으로 안착하는 회사가 있는 반면 합병 후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는 로펌을 꼽기도 어렵다는 게 로펌계 안팎의 지적이다.

A로펌의 경우 합병 후 1년이 지났으나 지나치게 해외 진출만 추진한 나머지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 존폐가 위협받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찾아오기도 했다.

B로펌의 경우 대외적으로 변호사 숫자 홍보에 열중하고 있으나 아직 법무부의 인가도 받지 못했고 합병 당사자 간 인력 교류도 진행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로펌의 금융·경제 참여가 활발하고 로펌의 기업 자문 건수가 폭증하는 요즘 로펌들도 오너 체제의 주식회사를 닮아가는 것일까. 이러다가 일단 '키우고 보자'는 중구난방 식의 합병으로 덜컥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에 빠져버리는 M&A 형태까지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기업이야 구조조정을 하거나 부실 자산을 털어내 위기를 헤쳐 나가면 되지만 파트너 간의 인력 복합체인 로펌은 청산 말고는 뾰족한 구조조정 방법이 없다.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변호사들은 '파트너'라는 지위를 부장에서 이사로 진급하는 승진 사례 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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