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서 회생사건을 접하다 보면 금융위기가 건설업계, 조선업계, 생산분야 등에 큰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이러한 수많은 기업의 회생과 파산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국 기업들이 최근 세계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시아나이제이션(Asianization)'이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지금까지의 서구선진국 주도의 세계화에서 아시아 국가 주도의 세계화로 변화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가 미국에서 시작돼 아시아는 선진국에 비해 충격을 덜 받았을 뿐 아니라 선진경제보다 먼저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된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 듯하다. PwC가 전세계 50개국 1124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앞으로 3년간의 기업실적 전망을 조사한 결과 실적이 회복될 것으로 답한 비율은 34%였으나, 한국 기업인들의 경우 전 세계 평균(34%)보다 10% 낮게 조사됐다고 한다.
그 동안 만나본 수많은 기업인들 중 대다수도 경제 회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우선은 위기극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기업인들의 예상은 투자나 사업 확장의 측면에서 기업을 위축하게 만든다. 결국 인재채용에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돼 취업대란과 실직의 공포를 초래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평균 임금액수도 88만원에 불과한, 그래서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비판한 말인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던 것에는 이러한 기업의 소극적 자세가 전제돼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우리는 2001년~2003년 경기침체기에 인텔이 다른 기업들과 달리 연구개발(R&D)에 투자해 혁신을 추구하였고, 그 후 경기가 회복된 2004년부터 매출이 급등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기업들은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점과 다른 기업들이 사업을 축소하고 연구개발을 중단할 때 오히려 경쟁자들을 앞지를 수 있는 기회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경기침체에 따른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한국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 차례 뼈를 깎는 아픔을 겪었기에 최근 경제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대부분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생존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압박은 기업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영방식과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창조해 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고성장을 위한 초석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혁신을 통해 기업경쟁력을 제고하는 기업이 경제위기 이후의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기업들이 아시아나이제이션(Asianization)을 단순한 학문적 용어가 아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라 믿고 자신감을 되찾아 기업혁신에 힘을 쏟는다면 놀라운 성과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기회는 잡는 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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