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북한 즐기기' 관전 포인트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 2009.06.12 07:15
지난 1999년 초 뉴욕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이스트 리버변 유엔 본부 건너편에 위치한 미 유엔대표부앞에서 느끼는 삭풍은 특히 매서웠다. 홈리스들마저 주일 5일 근무를 철저히 지키는 맨해튼이다보니 주말 황량한 '타향 땅'에서의 ‘노상 뻐치기’는 서울에서의 경험보다 더 춥고 삭막했다.

회담은 거의 주말마다, 몇 시간씩, 몇 주째 이어졌다. 피곤한 몸보다 무거운 것은 마음이었다. 당시 외환위기의 한가운데 놓였던 한반도 상황에서 ‘북한(NK) 팩터’는 자력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올가미’였다. 무디스, S&P 등의 한국 국가신용등급 평가 보고서마다 두번째 단락정도에서 예외없이 꼽던 최대 불안요인중 하나이다. NK 문제의 해결 없이는 위기 탈출도 요원해 보였다.

촉각은 온통 대표부내에서 진행되던 미국과 북한간의 미사일 협상에 쏠렸다. 하지만 매번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리근 북측 대표의 입에서는 고작 “다음에 봅세다”라는 말이 고작이었다. 지루한 협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몇 주가 이어진후 나온 양측간 합의는 단군이래 최대 위기라던 이른바 ‘IMF 사태’의 분수령으로 기억된다. 개인적으로도 환율이 1000원을 넘으며 시작됐던 ‘뉴욕에서의 IMF 사투’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IMF사태이후 최대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NK팩터는 또 불거졌다.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도 한두발이 아닌 여러 발을 쏘아 올렸다. 유엔 안보리에서는 대북 제재결의안 채택을 또 논한다. '도발'의 강도는 이전보다 훨씬 쎄다.

그런데, 이젠 다르다. 온 국민이 허망함에 잠긴 그 날 터진 핵실험 소식에도 긴장감이 지속된 시간은 40여분에 불과하다. 그 날도 쏘고 다음날도 또 미사일을 쏘았지만 증시도 끄떡없었다. 장거리 미사일마저 발사하겠다고 나오지만 분위기는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다.


워낙 되풀이되는 위협에 우리의 경계감이 무뎌진 것인지, 국제사회가 이골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디스, S&P, 피치 등은 즉각 보고서를 통해 NK팩터가 한국의 신용등급에 전혀 문제 안된다고 강조했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스가 재밌는 시각을 내놓았다. FT는 한국 증시가 북한의 핵실험이나 김정일 와병설 정도에는 흔들림이 없지만 통일은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은 한반도의 통일이 다시 멀어졌다는 사실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일깨워준 신호음처럼 해석됐다는 것이다. FT는 칼럼의 제목도 '평양으로부터의 폭음'이라는 비유로 '평-뱅(PyungBang)'이라고 붙였다.

칼럼은 지난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이 연간 4~5%의 GDP를 동독에 쏟아 부으면서 실업이 급증한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한반도 통일은 한국의 경제와 시장을 '두들겨 팰 것'이라며 통일비용으로 2조~3조 달러가 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잇단 북한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투자자들의 평정심이 유지되는 것은 여전히 통일이 멀기만 한 현실이라는 확신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북한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중국의 입장도 이와 다를 바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 권력 공백시 우려되는 대량 북한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체제 유지는 필수 불가결이라는 설명이다. 솔직히 말하면 현 시점에서 휴전선을 무너뜨리고 1000여만명이 넘어온다면 한겨레는 공멸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 가. '위협 요인'만 없다면 북한 체제의 권력 승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드라마 못지않은 재미를 줄 것이다. 간간히 세계적 오보를 내주는 일본 언론들의 해프닝도 곁들여진다면 흥미는 배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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