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살리기

머니투데이 김영권 머니위크 편집국장 | 2009.06.11 12:24

[웰빙에세이]가슴에 울림이 있다면 살아있는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의 죽음에 가슴 아프다. 슬프고, 안타깝고, 미안하다. 슬픈 것은 그를 잃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아픔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미안한 것은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이쯤 말하면 당장 '노빠'라는 딱지가 붙을지 모르겠다. "야단법석 떨지 말라"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나는 화가 난다.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솟는다. 그러나 그러지 말자. 대신 노무현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는 두번 죽었다. 첫번째는 정치적 타살이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 정도로 깨끗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랬으면 했다. 하지만 먼지 같은 게 난 모양이다. 그걸 가지고 그를 궁지로 몰았다. 나는 먼지가 많아 그에게 돌을 던지지 못하겠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은 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과녁을 뚫을 때까지 아무도 멈출 수 없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두번째는 자살이다. 그의 자살도 정치적 승부수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정치적 죽임에 정치적 죽음으로 응수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것보다 무겁다. 그렇다면 그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스스로 선택하고 정면으로 마주한 죽음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답은 그의 유서에 있다.

첫째, 그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이라고 했다. '생사불이'(生死不二),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그의 유서는 불교적이다. 누구나 삶의 종착점은 죽음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간다. 그 죽음을 바라보니 삶이 무상하다. 대통령이었던 그에게도 삶은 무상하다. 어쩌면 더 무상하다.

삶과 죽음은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 속에 있다. 영겁의 윤회 속에서 일생은 촌각일 뿐이다. 촌각의 삶이 무상하기에 그는 마침내 삶의 욕망과 집착을 내려 놓는다. 갑자기 버겁던 삶이 가벼워지고, 미지의 죽음도 두렵지 않다. 내 앞에 이미 수천 수만 생이 있었고, 내 이후로도 수천 수만 생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 모든 것을 품고 유유히 흘러간다. 내가 악착같이 부여잡으려 해도 결국 잡히는 것은 없다. 내 안에 들어온 것도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그러니 모두 놓아버린다. 그러면 나는 무심하게 흘러흘러 큰 바다에 이르고, 대자연에 스며들 것이다.

둘째, 그는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 슬퍼하지 말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 하지 말고, 그를 잃은 것을 슬퍼하지 말고, 그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을 원망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슬픔과 자책과 미움을 분노로 키워 삶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는 절절한 심정으로 이런 유서를 썼을 것이다. 나의 한을 갚아달라는 억한 심정으로 이런 당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뜻을 헤아려 슬픔을 거두고, 자책과 미움도 던져버릴 일이다. 그러면 용서도 되고, 포용도 되고, 화합도 가능할 것이다.

셋째, 그는 시신을 화장하고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달라고 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조각이니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었나 보다. 그 바람대로 그는 작은 조각 하나를 남기고 흙으로 돌아갔다. 작은 비석은 그가 세상에 남긴 미련이다. 그도 한조각 미련까지 내려놓지는 못했나 보다. 그래서 그는 인간적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그가 어떤 울림으로, 에너지로 누군가에 남아 있다면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각자 그것을 가슴에 담기로 하자. 가슴에 어떤 울림이 있다면 그는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울림이 사라지면 그는 죽은 것이다. 무릇 어떤 죽음이 그와 같지 않을까.


  ☞웰빙노트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기 위해, 그대는 그들의 존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의 몸, 감정, 정신 속에서 그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구경꾼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몸 안에서 몸을, 감정 안에서 감정을 살펴야 한다. <틱낫한, 틱낫한의 평화로움>

아무나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가슴 안에 한 송이 꽃이라도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그저 죽어서 한줌 흙이 되는 것으로도 감지덕지할 일이다.<이외수, 청춘불패>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변화지.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게, 언제나 다시 또 다른 날로 이어지지. 두 번 다시 같은 날이 오지 않지만 오늘이 가면 또 내일이 오네.
사람의 몸뚱이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면서 먼지로 바뀌지만, 다른 모습을 띤 삶이 그 생명력을 받아 이어진다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변화는 우리 몸으로 보아서는 끝이지만, 같은 생명력이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드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되살아남 또는 이어짐을 믿네. 우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네.
생은 죽음의 동반자다.<헬렌 니어링, 사랑 그리고 마무리>

사람의 삶은 오직 기운의 모임이다.
기가 모이면 삶이 되고 기가 흩어지면 죽음이다.
생사가 서로 동반하는 것을 안다면 무엇이 근심할 까닭이 있겠는가.
원래 만물은 하나이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신기롭다고 생각하고 싫어하는 것은 썩은 냄새로 친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그것이 다시 신기한 것이 되고 신기한 것이 다시 썩은 것으로 되니 고로 천하 만물은 기운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오직 한가지인 '진리'를 귀히 여긴다.<장자>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밥 먹자" 기내식 뜯었다가 "꺄악"…'살아있는' 생쥐 나와 비상 착륙
  2. 2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3. 3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4. 4 박수홍 아내 "악플러, 잡고 보니 형수 절친…600만원 벌금형"
  5. 5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