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위기 이전을 다시 보자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장 | 2009.06.05 09:35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대미문'이라는 그간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빠르게 진정되고 있다. 주가나 소비자심리지수 등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경기가 다시 하강하면서 'W자형' 침체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최소한 금융위기의 쇼크에서 신속히 탈출한 것은 위기의 발생만큼이나 예상을 벗어난 것이다.

이제는 '위기 후'(post crisis)에 대한 걱정이 위기 초반에 닥친 충격을 대체하는 분위기다. 금융회사의 연쇄파산을 막기 위해 시중에 쏟아부은 유동성이 '초(超·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일례다. 성장률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물가가 급등해 버리면 경제가 다시 타격을 받아 저성장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이 단기 부동자금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작 경제가 이 시나리오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또한 급속한 회복 없이 2~3년간 완만히 성장할 것이란 신중론이 맞을지도 현재로선 예측불허다. '말 바꾸기'에 능숙한 경제학자들은 비관론에서 낙관론으로 속속 진영을 옮기고 있으나 '위기 후' 상황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경제학자들은 왜 이번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이 다시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 와튼경영대학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슈퍼컴퓨터와 첨단 경제모델을 갖춘 이코노미스트들이 위기를 간파하지 못한 이유의 하나는 경제주체들의 심리와 미래 기대수준을 간과한 때문이었다.

특히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가정에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거나, 집값이 가계소득 이상으로 상승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학자가 적잖았다고 한다.

이와 함께 은행이나 금융회사의 역할을 감안하지 않은 탓도 있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경제학자는 물론 중앙은행조차 지난 30여년간 생산자나 소비자 등 실물경제 주역에 초점을 맞춰 경제모델을 만들었는데 은행들이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수 경제학자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금융위기를 못본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는 혹평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번 위기를 부추긴 것은 리스크가 큰 상품을 만들어내고, 과도한 차입을 독려한 금융회사였다. 주요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계기로 무분별한 차입형 투자를 한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런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한국은행 산하 금융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위기의 씨앗인 주택가격이 2000년 이후 콜금리 변경보다 국민소득, 소비지출, 주거용 건설투자, 물가 등 실물경제 및 가계대출의 충격에 더 유의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됐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거시경제정책을 일관성 있게 운용하는 한편 부동산으로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시장을 예의주시하는 게 또다른 위기를 막는 길이라는 얘기도 된다.

우리 금융당국은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규제한 게 충격을 최소화했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타격이 큰 유럽에서 일부 은행이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덕분에 위기를 피해간 사례가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당국의 할 일은 더 있다고 본다.

은행 등 금융회사를 튼실하게 키우고, 기본에 충실하도록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위기를 또다시 예측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충격을 비켜가려면 기본이 강한 은행, 금융회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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