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했어요, 몸값 넣으세요"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 2009.06.05 09:07

[머니위크 커버스토리]사기경보/ ④사기의 진화

편집자주 | 세상이 변한 만큼 '사기'도 변했다. 수법은 상상력이 부족할 정도로 교묘해졌다. 공간은 자유자재로 온ㆍ오프라인을 넘나든다. 이렇게 살벌ㆍ씁쓸한 시대에는 사기 당하지는 않는 것도 재테크다. 정신 바짝 차려야 자기 돈과 신용을 지킬 수 있다. 날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발전하는 사기의 세계와 그 대응 요령을 공개한다.

"나에 관한 것은 내가 가장 많이 아는 줄 알았는데…."

영화 <트루먼쇼>의 주인공 트루먼. 그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사실 그의 삶은 대중에게 24시간 생방송되는 리얼리티 쇼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이런 일이 실제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신용사회에서 또 다른 '나'라 할 수 있는 개인(신용)정보가 만천하에 공개돼 있다면?

최근 개인(신용)정보 유출을 둘러싼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법 대출 중개인이나 보이스 피싱은 물론 개인의 정보를 노리는 함정이 생활 곳곳에 숨겨져 있다.

박춘성 성북경찰서 지능수사팀 형사는 "평소 대출 안내 등의 문자메시지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면 거의 100%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별것 아닌 것으로 간주하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 자신도 모르게 도둑맞을 수 있는 개인 정보에 대한 철통 보완이 시급하다.

◆낚시의 진화, 떡밥에 걸리지 않으려면?

#1. 서울 강남에 사는 A씨는 지난 1월 '한전고객센터'라는 곳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기 절약법과 함께 절약을 위한 보조기기를 방문해서 설치해준다는 내용. 또 환급금을 돌려준다며 통장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게 꺼림칙해 정보를 주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진짜 한전인 줄 알고 개인정보를 부를 뻔했다”고 말했다.

#2. 강원 사북우체국의 직원 B씨는 "신용카드가 동봉된 우편물이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체국 직원이 우체국 직원을 사칭하는 전화를 받은 것. 잠시 후 핸드폰으로 '경찰청'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통장에 보완장치를 해주겠다며 우체국 자동화코너로 가라고 지시했다. 직원은 상대방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기 계좌번호를 알아내 지급 정지시켜 피해를 막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7년 3977건이었던 전화금융 사기는 건수는 지난해 8739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피해액도 지난해 875억원에 달한다.

낚시질도 진화한다. "전화로 개인정보를 낚아 올린다"는 뜻의 일명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도 날로 지능화하는 양상이다. 과거 어눌한 옌볜 사투리에 국세청 등을 사칭하는 수법에서 뚜렷한 표준어를 구사하며 우체국이나 은행 등 생활 밀접 기관을 사칭하는 방향으로 교묘해지는 추세다.

그러나 이에 대한 예방 및 대응법은 간단하다. 전화로 현금 입출금기(ATM) 조작을 지시하는 경우나 개인정보나 계좌번호를 묻는다면 사기 전화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진짜 관공서에서 연락이 온 건지 걱정된다면? 박춘성 형사는 "상대방이 알려준 전화 말고 반드시 해당 기관의 대표전화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이미 보이스 피싱을 당해 돈을 송금했다면 바로 경찰(국번없이 1379)에 신고하고 가까운 은행이나 금감원(02-739-8576)을 통해 계좌지급 정지와 개인정보 노출자 사고예방시스템에 등록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

◆'메신저도 위험하다' 신종 메신저·이메일 피싱

개인(신용)정보를 노리는 사기는 전화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 혹 당신의 ID와 비밀번호 등이 둥둥 떠다니는 것은 아닌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 사고가 났는데 합의금이 필요하다. 빨리 00만원만 000계좌로 넣어줘."

회사원 C씨는 얼마 전 메신저를 하다 친구가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절친한 친구인데 모른 척할 수 없어 인터넷뱅킹으로 이체하려던 그는 혹시나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게 웬걸? 친구는 뜬금없다는 반응. 알고 보니 누군가 친구의 아이디 등을 도용해 돈을 갈취하려던 것. 게다가 그 말고도 친구의 지인으로 등록된 모두에게 이 같은 메시지가 전달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회사원 D씨는 며칠 전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메신저에 들어온 것을 보고 반가움에 말을 걸려했다. 그러나 친구는 딱 한줄 사이트링크를 남기고 나가버렸다.

링크를 클릭해보았더니 '로그인'하라며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창이 뜬다.

물론 이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되면, 당신의 소중한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이미 당신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00회원님, 차에 주유비 100만원을 채워드립니다." "에버랜드 1년 회원권 무료 증정 소식" 등 이메일로 응모하지도 않은 당첨 소식이 전해진다면 역시 사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메일 피싱'일 수 있다.


IT강국이라지만 국내 웹사이트의 보안 체계는 대부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보안기업인 NSHC가 최근 1년간 공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 개인 홈페이지 등 약 100여개 웹사이트를 대상으로 모의해킹을 수행한 결과, 조사대상 웹사이트의 91%에서 민감한 고객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보안 취약점이 발견됐다.

인터넷상의 피해를 줄이려면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습관을 들이고 제3자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비밀번호 노출이 의심되는 경우 새로운 비밀번호로 변경하는 것이 상책이다.

◆"방심하지 마라" 사기에 걸리지 않는 지혜

'설마 내가 낚여서 피해를 입겠어?'

평소 낚시질을 피하는 데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경우라도 다시 한번 짚어보자.

혹 이사를 하면서 과거 주소지로 우편물이 전달된 경험은 없는가?

주변의 권유로 신용카드를 만들면서 주민등록등본 복사본을 비롯해 인적사항을 빼곡히 기록해 전달하지는 않았는지?

주차하면서 꽂아둔 명함에서 개인정보가 새나갈 우려는 없는지?

회원 가입을 하면서 회사의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았는가?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싼 일상의 금융 사고의 위험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속아 직접 돈을 이체하지 않은 경우에야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뭔 큰일이야 나겠냐'고 대수롭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까지도 당신의 정보를 노린다면? 실제 몇해 전에는 초등학생이 공개 수배된 흉악범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유료 게임 사이트에 가입해 소동을 빚기도 했다.

신종사기수법 중엔 특정한 집안의 식구들 이름과 연락처, 나이 등을 알아낸 뒤 "당신 아들이 납치됐으니 몸값을 입금시켜라"와 같은 납치 협박에 악용하기도 한다.

◆내 소중한 정보 값은 '단돈 100원'?

정보가 곧 돈인 세상, 개인 정보 역시 불법으로 거래된다. 더 기막힌 것은 이러한 개인(신용)정보가 최근 워낙 많이 인터넷 등에 떠도는 탓에 거의 '똥값'에 거래된다는 것. 대출 상담사들을 통해 거래되는 개인 파일은 보통 1000건에 10만~15만원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인별 정보 파일이 겨우 단돈 100~150원에 팔려나가는 셈이다.

반면 이러한 정보 유출로 입게 되는 피해액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박춘성 형사는 "명의가 도용돼 휴대폰이 만들어진 한 피해자의 경우 전화 단 1통의 전화요금이 무려 3000만원이나 나왔다"고 전했다. 그 1통은 대량의 스팸 문자 메시지 발송에 쓰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개인신용평가회사인 KCB의 관계자는 "일단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넘어가게 되면 대포통장을 만들고 휴대폰을 만들고 불법 대출을 받는 등 1타 3피, 1타 4피의 피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정보가 유출돼 발생하는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평소 개인(신용)정보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답이다.

'답'이 너무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뚫려 있는 시대에는 개인이 수시로 자신의 정보 유출을 점검하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평소 예방 수단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가장 효과적이다. 올크레딧(allcredit.co.kr)과 같은 신용관리사이트에서는 신용정보 변동이 발생하면 문자메시지나 이메일로 통보해주고, 명의도용 등으로 본인이 모르는 카드 발급이나 대출 및 신용정보 조회 건이 있을 때는 즉시 해당기관에 통보해 상당한 사고를 사전에 차단해준다.

◆개인(신용) 정보 사고 예방법 5

1. 카드영수증이나 현금영수증, 청구서 등은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고 확실히 챙긴다.
2. 이사 등으로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즉시 금융기관에 연락해 청구지 정보를 수정한다.
3. 공용 컴퓨터에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사용 후 인터넷 임시파일을 제거하고, 인증서는 USB에 보관한다.
4. 인터넷 창은 끄기 전에 로그아웃 한다.
5. 신용관리사이트의 금융명의도용위험 진단 및 예방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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