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 잘쓰면 약 잘못 쓰면 독

이재하 성균관대 SKK GSB 부학장 | 2009.05.30 07:35

[MBA지상특강]환율과 키코 손실의 교훈

전 세계에서 금융위기와 더불어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 위험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주식에 투자하면 주가하락위험, 채권에 투자하면 금리상승으로 인한 가격하락위험에 노출된다.

또한 해외자산에 투자하여 투자수익을 원화로 환전하거나 혹은 수출업체가 외화로 수출대금을 받아 원화로 환전할 경우 환율이 얼마가 될지 불확실하며 혹시 환율이 크게 하락하면 수익이 급감하는 위험이 항상 있다. 이와 같은 위험에 미리 대처하여 원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손실을 최소로 하는 관리가 절실하다.

위험관리는 헤지(Hedge)라고도 표현하며, 파생상품 중에서도 옵션이 헤지에 요긴하게 사용된다. 그런데 키코(KIKO)라는 환헤지 상품을 통해 490여 개의 수출 중소기업들이 작년 11월 말까지 4조 5000억 원대의 손실을 기록했다고 한다. 위험관리를 시도했는데 오히려 외환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떻게 된 일일까?

환율이 1달러당 950원이고 월 수출액이 50만 달러인 A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가상의 사례를 통해 환율 손실을 최소로 하려던 A기업이 키코의 늪에 빠지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첫째, A기업은 환차손을 방지하기 위해 행사가격 950원인 달러 풋옵션을 10원에 매수하기로 한다. 50만 달러에 대해 500만원(=10원x50만)의 풋옵션을 매수하면, 달러가 폭락 850원까지 떨어져도 950원에 팔 수 있으므로 수출대금 환차손 100원을 고스란히 복구하여 헤지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다만 1달러당 10원, 즉 총 500만 원의 헤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둘째, A기업은 헤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달러가 950원에서 900원까지 떨어질 때만 효력이 있고 한번이라도 900원보다 더 내려가면 효력이 소멸되는 녹아웃(Knock-Out: KO) 풋옵션을 B은행으로부터 5원에 매수한다. 녹아웃 풋옵션은 혜택이 작은 만큼 가격도 저렴해 비용이 반감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

달러가 900원 이하로 떨어지면 풋옵션은 효력이 소멸해 수출대금 환차손이 모두 실현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A기업은 환율이 내려가더라고 부디 900원까지만 내려가길 바라야만 한다. 다행히 환율이 900원까지 떨어진다면, 1달러당 5원, 총 250만 원의 헤지 비용으로 환차손을 복구할 수 있다.

셋째, 헤지 비용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A기업은 B은행과 1:2 키코 계약을 체결한다. 즉, 녹아웃 풋옵션 1개를 5원에 매수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달러가 1000원까지 오를 때는 효력이 없다가 한번이라도 1000원 이상으로 오르면 효력이 발생하는 녹인 (Knock-In: KI) 콜옵션 2개를 5원에 B은행에 매도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헤지 순비용은 제로(=5원-2.5원x2개)가 된다. 월 수출액 50만 달러에 대해 녹아웃 풋옵션은 250만원(=5원x50만)어치 매수, 녹인 콜은 250만원(=2.5원x50만x2개)어치 매도함으로써 헤지비용이 제로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A기업은 이 키코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환율상승위험에 크게 노출된다. 위에 언급한 첫째와 둘째의 경우 모두 환율하락위험에 대한 헤지가 이뤄졌고, 특히 수출기업이므로 환율상승은 수익의 증대로 이어진다. 셋째 단계까지 나아가면 A기업은 키코 계약 때문에 환율이 1,000원 위로 절대 올라가지 않기를 바라야만 한다.

제로비용을 만든 키코의 함정은 레버리지(Leverage)다. 위 키코계약의 경우, 풋옵션 1개에 대해 콜옵션 2개, 즉 2배의 레버리지가 있다. 만일 환율이 급상승해서 1,100원이 되면, B은행이 1,100원 달러를 950원에 살 수 있는 콜옵션을 2개 행사하므로 A기업은 100만 달러(=50만 달러x2개)을 B은행에 지급해야 한다.

이 때 A기업은 월 수출대금이 50만 달러이기 때문에 수출대금 모두를 B은행에 1달러당 950원에 넘기게 된다. 있던 달러를 넘기는 상황은 그나마 낫다. 나머지 50만 달러는 A기업이 외환시장에서 1달러 당 1,100원에 사서 950원에 넘겨야 한다. 옵션거래에서 가장 위험한 포지션인 무방비콜(Naked Call)을 A기업이 취한 셈이 된다.

애초에 환율하락에 대비해 위험관리를 시도했던 A기업은 어느새 환율이 1,000원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에 베팅하는 매우 위험한 투기를 하게 된 셈이다. 실제로 1:3 계약, 심지어는 1:5 계약까지도 체결했던 중소기업도 있었다. 실제로 2007년 하반기 이후 체결된 키코로부터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급등한 환율 때문에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다. 영업이익 흑자인 기업들이 키코 손실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만약 A기업 부분헤지(Partial Hedge)를 택한다면 레버리지 위험을 덜 받을 수도 있다. A기업이 1:2 키코를 통해 꼭 제로비용을 추구하면서 환율하락에 대처하고 싶다면 월 수출액의 절반인 25만 달러에 대해서만 헤지를 걸면 된다. 즉 25만 달러에 대해 풋옵션 1개를 매수하고 콜옵션 2개를 매도하면 적어도 무방비콜은 피하고 커버드콜(Covered Call)을 취하면서 월 수출액의 반 정도만 위험관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A기업은 오히려 오버헤지(OverHedge)의 유혹을 받는다. 키코의 구조상 환율이 950원에서 900원까지 움직이면 풋옵션으로부터 이익이 발생한다. 이를 노리고 A기업이 월 수출액 50만 달러에 대해 1:2 키코 계약을 B은행, C은행, D은행과 체결하는 것이다.

총 150만 달러에 헤지를 건 후, 환율이 예상대로만 움직다면, B은행 계약은 헤지, C은행 및 D은행 계약은 환투기 포지션이 된다. 초심의 위험관리가 심한 환투기로 이어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오버헤지의 유혹에 넘어가 큰 손실을 봤다.

키코 사태 위험관리가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행이 키코가 지니는 레버리지 위험을 기업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면 불완전 판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또한 기업이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전문성 제고와 함께 위험관리를 해 왔다면 키코 계약에 더욱 주의깊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헤지 시에 항상 다가오는 투기에의 유혹 또한 뿌리칠 수 있다는 것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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