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조문길 열렸으면...

머니투데이 송기용 기자, 박재범 기자 | 2009.05.24 19:33

"조문 훼방 안돼... 편히 보내드리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일반 국민은 몰라도 거물급 정치인에게 빈소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바늘 구멍 들어가기보다 힘들다.

 봉하마을을 둘러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일부 회원과 마을 주민들이 친노(친노무현) 인사들을 제외한 정치인들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조문을 막고 있다.

 지난 23일 밤 10시께 봉하마을을 찾은 한승수 국무총리는 마을 진입조차 못했다. 24일 오후엔 김형오 국회의장이 분향소가 있는 봉하마을 회관쪽으로 걸어오던 중 노사모 등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았다. 3부 요인 중 2명이 빈소에도 들르지 못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야당 대표를 지냈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조문을 하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측근 의원의 일부 만류에도 불구 "조문을 하고 예의를 표하는 게 정도"라며 봉하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현재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서울에 분향소가 마련되면 조문하는 게 좋겠다'는 봉하마을 관계자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조문을 못한 채 돌아갔다. '비 노무현' 계파로 분류되는 인사도 냉대를 당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구여권 후보를 지냈던 정동영 의원은 지난 23일 오후 부인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노사모 회원과 주민들은 마을 입구를 걸어오는 정 의원에게 '배신자'라며 조문을 가로 막아섰고 정 의원은 발길을 되돌렸다. 정 의원은 하루 뒤인 24일 오전에야 부인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후진적인 한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도 대(大)일변하고 국민도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극한 대치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자성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인의 뜻도 다르지 않았다. 굴곡 많은 세상과 작별하며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지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였다. 누구도 탓하지 말고 비난하지 말라는 타이름이다.

 생전에 영호남으로 양분돼 갈등하는 정치구도를 가장 안타까워했고 그 현실을 바꾸려 고군분투했던 노 전 대통령은 세상과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화합을 얘기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죽음이 국론분열로 이어지기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노사모가 노 전 대통령을 진정 사랑한다면, 노 전 대통령을 노사모의 '노짱'이 아니라 전 국민이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도록 모든 이에게 조문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받았을 충격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순 없다. 하지만 '노짱'이 펼치고자 했던 화합의 큰 정치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정적'이었던 정치인들에게도 조문의 길을 터주기를, 그리하여 노 전 대통령의 유지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나와 다른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정파적 대립을 이유로, 조문을 훼방 놓는 일,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는 일은 분명 관용의 정신에 배치된다.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토록 대들고 따졌던 기득권 집단의 내 편 아니면 네 편이라는 국가보안법식 발상이며 국민장이라는 유족들의 결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최재천 전 열린우리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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