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회장, 장고 끝에 묘수?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9.05.27 10:45

[머니위크 CEO In&Out]허창수 GS그룹 회장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며 산업은행과 벌인 협상이 결렬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은 누굴까? 모르긴 몰라도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아닐까.

사실 허 회장은 그룹의 성장엔진으로 일찌감치 대우조선해양을 지목했다. 2006년부터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정보수집에 나설 만큼 예의주시하던 사냥감이었다.

본입찰 4일 전 전격적으로 포스코와 손을 잡으면서 사실상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은 포스코-GS컨소시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막강한 두 진영이 연합함에 따라 탄탄한 재무 안정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GS가 다시 컨소시엄 탈퇴와 입찰 포기를 밝히며 축제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허창수 회장은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과의 협상 자리에서 입찰가격이 맞지 않다면서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그 여파로 컨소시엄 구성 이전부터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포스코마저 입찰자격 박탈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허 회장은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허 회장은 컨소시엄 탈퇴 이유에 대해 "가격이 맞지 않아서"라고 밝혔다. 만약 인수를 무리하게 강행했다면 그룹 전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시가총액 2조원도 안 되는 회사의 지분 50%를 6조원에 산다는 것은 결코 옳은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 GS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허 회장의 번복은 모양이 좋지 않았지만 어부지리 격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한화가 대우조선해양 인수포기를 선언하면서 그 진가가 드러났다. 한화는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전례 없는 경제불황과 실질적인 기업실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빌미로 인수 직전에 발을 뺐다.

한화는 산은에 계약금 조로 건넨 3000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힘겨운 법정 다툼까지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최종 승자는 허창수 회장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신중함 뒤에 따라온 전화위복

허 회장은 올해 초 GS 신년모임에서 “지금 상황은 지나친 낙관이나 막연한 기대가 통하지 않는 국면이다. 이런 위기국면 속에서만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해 달라. 자신감을 가지고 필요한 투자를 제때 집행하고 어떤 경우에도 도전적인 면모를 잃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 같은 주문 때문일까? GS는 결국 5월25일 MSPE(모건스탠리 프라이빗 에쿼티)가 보유하고 있던 ㈜쌍용 보통주 69.53%(742만5634주)를 주당 1만8000원 이하에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GS는 이날 GS리테일, GS홈쇼핑, GS건설 등의 해외 진출 및 사업 강화를 위해 쌍용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쌍용의 인수금액은 고작 1300억원대다. 그동안 GS가 참여한 인수합병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인수합병에 목말라있던 GS의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부족하다.

사실 허 회장은 인수합병(M&A)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신중론자다.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금호아시아나에 밀렸고, 하이마트는 유진그룹에 내줬다. 모두 GS가 인수 가능성 1순위로 꼽혔지만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모양새가 됐다. 이런 이유로 허 회장은 "결단력이 없다"는 평도 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GS를 제치고 인수에 성공한 기업들은 모두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급속하게 성장했던 유진그룹이나 재계 순위 9위의 금호아시아나는 모두 공격적인 M&A의 뒤끝이 좋지 않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역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강행할 경우 그룹 전체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최종 판단에 따라 아쉬운 꿈을 접었다. 허 회장의 컨소시엄 탈퇴가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재평가받는 이유다.

◆내부 인화로 다진 결속력


그룹간 컨소시엄 제휴조차 깬 허 회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인화를 경영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LG그룹이 1947년 창업 이래 2004년 GS가 독립해 나가기까지 57년이란 긴 세월동안 성공적인 동업관계를 유지하면서 화합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도 허씨와 구씨 두 가문의 인화와 내실을 중시하는 경영풍토에 있었다.

허 회장은 평소 기업 경영에 있어 한번 사람을 믿으면 끝까지 믿고 맡기는 성격이다. 일일이 업무를 챙기거나 관리하기보다는 전문경영인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만 큰 흐름과 방향을 제시하고, 자회사는 CEO가 책임지고 경영 하는 계열사별 각개전투를 선호한다. 2005년 CI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경석 부회장과의 역할분담을 묻는 질문에 "서 부회장과 생각이 전적으로 일치한다"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래도 2004년 출범 이래로 매월 한차례씩 계열사 사장단 회의와 분기별 GS 임원모임을 주재하며 현장파악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3월에는 송파구 문정동 GS스퀘어 송파점을 지하 2층에서 2층 문화센터까지 둘러보고 현장직원을 일일이 격려했다.

인화의 폭은 말단 직원에게까지 미친다. 그룹의 지주사인 (주)GS의 직원이 23명에 불과하지만 허 회장은 모든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일일이 꿰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허 회장은 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며 부하직원과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깊다”고 평했다.

◆내일 먹을 밥상은 아직도 부실

내부 결속을 통해 한층 강화된 GS지만 여전히 미래의 먹거리 고민이 남아 있다. 연이은 M&A 실패 등으로 성장동력을 챙기지 못하면서 내실만 다져서는 글로벌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허 회장은 지난 4월22일 GS 임원모임에서 “GS의 미래형 사업구조를 정착시켜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글로벌 경제가 이미 충분히 성숙돼 있어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경제위기 돌파를 위한 허 회장의 최우선 대책은 지속적인 투자다. 올해 그룹의 대들보인 에너지부문에 1조7000억원, 유통부문에 4000억원, 건설부문에 2000억원 등 총 2조3000억원을 투자한다. 이는 지난해 2조1000억원보다 약 10% 늘어난 규모다.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더라도 고도화시설 등에 대한 시설투자를 지속해 성장 잠재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올해 GS그룹은 자산규모에서 현대중공업에 밀리며 8위로 한단계 하락했다. 비슷한 시기 허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활동을 시작했다. GS로 분가하기 전까지 은둔의 경영자라는 말을 들었던 허 회장이 그룹 성장의 돌파구를 어떻게 뚫어나갈지 그의 리더십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허창수 회장 약력
1948년 경남 진주
고려대 경영학 학사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 석사
LG화학 부사장
GS건설 대표이사 회장
GS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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