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오바마를 키워요"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 2009.05.21 13:12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9-1>다문화인재 키우는 베트남여성들과 하나 키즈오브아시아

편집자주 | 이해관계가 달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다. 각자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 없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준다. 다른 나라의 경제위기와 환경파괴는 우리나라의 시장 축소와 기후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로운 해결법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2009년 쿨머니 연중 캠페인 '하나의 세상에 사는 우리, 하우(How)'를 통해 지구촌 당면 과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는 현장을 방문해 그 노하우를 전한다.

↑하나 토요베트남학교는 한달에 두번, 세이브더칠드런이 진행한다. ⓒ하나금융그룹

"안 껌 디(밥 먹자)." "디 저어 디 (놀자)."

장성환 씨(36)는 한 달에 하루는 예슬(4), 예빈(3) 두 딸과 베트남어로만 말하고 논다. 베트남 노래를 듣고 베트남 영화를 본다. 일명 '베트남 데이'. 아이들에게 엄마 나라를 가르치려는 '남다른 조기교육'이다.

문화의 힘은 강했다. 팜티 퀸화 씨(29)는 지난해 남편이 '베트남 데이'를 시작한 이후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싫다던 아이들이 "언제 외갓집 가냐"고 조르게 됐다는 것이다.

퀸화씨는 아이 친구들에게 베트남 문화를 전했다. 베트남전통과자 '믓'을 주고 베트남 옷을 보여줬다. 아이 친구들은 '맛있는 과자 먹고 예쁜 옷 입어서 좋겠다'며 퀸화 씨네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우리 예슬이가 언젠가 '콩 틱 (싫어)'이라고 말했다가 어른한테 '이상한 말 한다'고 혼난 적이 있어요. 그후 한동안 베트남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서 맘이 아팠어요. 지금은 다른 사람 앞에서 '우리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라고 당당히 말해요."

◇다문화, 왕따 요인을 인기 비결로=퀸화씨와 8명의 베트남 유학생들이 '남다른 조기교육'에 뛰어들었다. 베트남인-한국인 부부의 자녀들에게 베트남어와 베트남 문화를 가르쳐 한국 속의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이다.

멍석은 하나금융그룹과 세이브더칠드런이 깔았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격주로 '하나 토요베트남학교'를 열어 베트남 유학생들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

↑베트남어 쓰기 교재를 만든
다문화가정 어머니, 퀸화 씨.
ⓒ이경숙 기자
퀸화 씨는 베트남어 쓰기 교재를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베트남어'라는 3권짜리 책도 준비하고 있다. 주한 베트남유학생회의 푸엉 씨, 응안 끄엉 씨 등 다른 유학생들은 아이들과 베트남어로 말하고, 쓰고, 놀면서 베트남 문화를 가르친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석사과정을 수료한 퀸화 씨는 "말을 잘 하느냐, 못 하느냐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겐 '난 다른 친구들보다 더 쉽게 다른 언어를 배우고 더 다양한 문화를 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름'을 왕따의 요인이 아니라 자부심의 원천으로 삼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금방 달라졌다. 세이브더칠드런의 김정아 간사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베트남어로 말하니까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며 좋아했다"고 전했다. 베트남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김 간사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자신의 반쪽 뿌리인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배움으로써 한국뿐 아니라 양쪽의 문화를 가지게 되면 더 건강한 인재로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한테는 유학생 자원봉사자들이 건강한 역할모델이 되어준다. 어머니 나라에서 온 똑똑한 유학생 형, 언니들이 다른 이들을 돕는 것을 보면서 자부심과 함께 건강한 시민의식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임영호 하나금융그룹 상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적 소외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이중언어 능력과 이중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미래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 프로그램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하나금융그룹은 2007년부터 양국어를 병기한 어린이용 위인전을 배포해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역할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안의 '오바마'=2007년에 결혼한 부부 9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다문화가정 자녀 수는 2007년 4만4000명에서 지난해 5만8000명으로 늘었고, 2020년엔 167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미래 구성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미래 구성원들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 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취학 연령대 자녀 2만4867명 가운데 6089명(24.5%)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복지재단 한국사랑밭회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34%가 자신이 집단따돌림을 받는 이유가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 엄마 때문’이라고 여긴다고 밝혔다. 정말 이것이 외국인 엄마 탓일까?

퀸화 씨는 "그건 엄마 잘못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한국의 학교 과정은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 어머니들은 물론, 직장에 다니는 한국인 어머니들조차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 아빠, 한국인 친척,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이 아이 공부를 도와주고 아이가 엄마나라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퀸화씨는 조언한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환경을 만들어줄 때 '다문화'는 아이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된다.

한 아이가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이가 2살 때 아이의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했다.

하지만 아이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늘 케냐의 아이 아버지를 칭찬했다. 이들 가족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미니 유엔과 같다'고 감탄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유년얘기다. '미니 유엔' 같은 환경에서 미래의 오바마가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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