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윤증현 장관, 취임 100일 편지에...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 2009.05.19 09:00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지금이야말로 다시 신발끈을 조일 때"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취임 100일을 맞이해 소속직원들에게 4번째 편지를 보내 "국민들이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재정부는 아무것도 한게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음은 윤 장관의 4번째 편지 전문.

취임 당시 앨리베이터 애널리시스 "참담했다"

국민이 체감해야만 진정한 변화입니다.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글로벌 위기 극복이라는 비상한 과제를 안고 취임한지 100일이 되었습니다. 굳이 시간을 언급하는 것은, 지금 우리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되는” 그런 과제와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환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취임 당시의 상황은 제게 '엘리베이터 애널리시스(Elevator Analysis)'란 용어로 각인되어있습니다. 당시는 각종 국제기구나 경제연구소들이, 자고나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성장 전망치를 경쟁적으로 내릴 때였습니다.

내려갈 것으로 보여서 전망치를 수정하는게 아니라 이미 내려가고있기 때문에 수정하는 것을 ‘엘리베이터 애널리시스’ 라고 하더군요. 내년에 3층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는데 다시 보니 이미 2층이라서 허겁지겁 2층이라고 수정하는 셈이지요. 참 고약한 경제용어라는 생각과 함께 참담한 심정이 밀려왔습니다.

취임 100일간 노력과 성과
사랑하는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그렇게 시작해서 우린 마치 싸움소처럼, 달리면서 동시에 판단하고 매뉴얼없이 싸웠습니다.

일자리와 민생을 위한 대규모 추경편성에 집중적으로 노력한 결과 다행히도 돈을 제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고, 내수 위축을 막기위한 재정조기집행 정책도 안정적으로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주요국과의 금융협력, 외평채 발행, 경상수지 흑자 등을 통해 외환수급사정을 개선했고, G-20 회담과 ADB 총회에서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취약점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금융시장 경색도 상당부분 해소했습니다.

서비스산업 선진화, 공공부문 효율화, 녹색뉴딜 등 위기 이후의 도약을 위한 정책도 기초공사를 착실하게 진행해왔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낸 지금 우리는 광공업생산, 경기동행?선행지수, 경상수지, 실업률 등 일부 지표들이 미미하게나마 개선되는 것을 보고있습니다.


국제기구나 외신들은 이를 보고 “한국의 경기회복이 가장 빠를 것”이라거나 “한국은 경기부양 효과를 보여준 첫 번째 국가”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우리나라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조정하기도 했습니다.

급락세 겨우 진정…다시 신발끈 조일 때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그러면 국민들이 보기엔 어떨까요?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우리는 경제지표 급락세를 겨우 진정시켰을 뿐입니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것도 한게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책이 지표 진정을 넘어 일자리와 사회안전망과 소비로 나타나도록 해야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방법은 부를 축적해 국민에게 흘러들어가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내외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GM 등 거대기업의 파산 가능성, 여전히 불안한 국제금융시장, 빠르게 늘고있는 부실채권, 수출감소와 내수부진,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않는 구조조정 등은 매우 엄중한 과제들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고개를 들어 멀리 목표점을 확인하고,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현장과 호흡하고, 상황을 장악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선병자의…"위기극복 성공 기대"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선병자의(先病者醫)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병을 앓아본 사람이 의원(醫員)이다”, 즉 “먼저 경험한 사람이 그 경험을 나침반 삼아 남을 인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우린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인 경제개발 경험을 갖고 있고, 이를 개도국에 나눠주고있습니다. 또한 우린 지금 10여년 전의 외환위기 극복 노하우를 G-20 회원국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세계가 우리의 재정확대정책과 녹색뉴딜과 잡셰어링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획재정부가 위기극복을 위한 대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의 항해 경험을 또 다시 세계와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여러분 선배들의 영광인 것처럼 지금 그려나가는 항해지도는 온전히 여러분들의 몫일 것입니다.

일상화된 야근과 주말근무에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2009.5.19

윤증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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