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검에 배달된 '빨대' 한상자

머니투데이 서동욱 기자 | 2009.05.15 11:43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인 대검 중수부에 최근 '빨대' 한 상자가 배달됐다. 경북의 한 시민이 '빨대를 찾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형형색색의 빨대 묶음 수십 봉지를 수사팀에 소포로 보낸 것이다.

빨대는 비밀스러운 취재원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다. 배경은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의 발언 때문인 것 같다. 홍 기획관은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 박연차 태광실업 전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에게 1억원 상당의 명품시계 2개를 선물했다는 보도와 관련, 문제의 빨대 발언을 했다.

홍 기획관은 "검찰이 만일 그런 사실을 흘렸다면 해당자는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이다. 나쁜 빨대다"며 유출자를 색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이 '형편없는 빨대'를 찾았다는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수사 내용 이외의 사안이 언론에 유출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 중에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정서상 허용되는 사안이 있다. 감추고 은폐하려는 내부 정보를 까발리는 정의로운 빨대가 있다.

하지만 수사의 흐름을 유리한 쪽으로 돌리거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정보를 유출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수사기관이 피의자나 피내사자의 개인적인 신상정보나 사생활을 거론하며 압박하는 후진적 관행도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때는 당시 대검 중수부가 청구한 정몽구 회장 구속영장 내용이 사전에 유출되기도 했다. 그 때도 내부 유출 의혹이 일자 수사팀은 "유출자를 색출해 처벌 하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소리 없이 마무리됐다.


철저한 보고체계와 보안 유지는 검사로서의 자긍심인 동시에 수사 대상자의 인권문제와 직결된다. 정보제공과,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한 보도는 언제나 법적 처벌을 감수하면서 행해져야 하는 무거운 사안인 것이다.

수사팀에 빨대를 보낸 시민은 동봉한 편지에서 "빨대를 색출하느라 맘고생이 심할 홍만표 검사에게 소박한 선물을 보낸다"며 "이 '나쁜 빨대들'의 총 가격은 400원입니다"고 적었다고 한다.

또 "빨대 보낸 자를 색출하겠다며 괜한 고생을 할까 싶어 실명으로 보냈다"며 자신의 이름을 적어놓기도 했다. 검찰이 빨대 값 400원의 의미와, 실명을 공개하면서까지 소포를 보낸 시민의 의도를 곱씹어보길 기대한다.

또 이번만큼은 나쁜 빨대를 찾아 내 피의사실을 공표한 '죄'에 해당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만 묵묵히 수사에만 전념하는 다수의 검사들, 불의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빨대들이 더욱 소신껏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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