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금융 '최초'의 달인

더벨 문병선 기자, 황은재 기자 | 2009.05.13 07:00

[금융법무 파워엘리트]⑪허창복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

이 기사는 05월12일(09:0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 최초 공개매수 제도 활용, 국내 최초 해외증권(전환사채) 발행, 국내 최초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 국내 최초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국내 최초 교환사채(EB) 발행, 국내 최초 신탁방식 유동화, 국내 최초 부실채권 유동화, 국내 최초 부동산 유동화, 국내 최초 리스자산 유동화, 국내 최초 주택저당채권 해외 유동화 등.'

1983년 설립된 이후 법무법인 세종이 이뤄낸 성과다. 세종의 금융 및 증권팀의 자문 내역은 그대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정부 관료들 서랍 안에 잠자고 있던 공개매수 제도를 실용화한 것도, 자본시장 개방 시기를 전후로 신종 증권이 발행될 수 있는 길을 텄던 것도, 국내에 유동화(ABS, MBS 등) 기틀을 마련한 것도 세종에서 시작됐다.

세종에서 금융 및 증권팀의 최고참인 허창복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54)를 만나 ‘최초’의 비결을 물었다.

“신영무 변호사가 증권거래법을 처음 공부했다. 신 변호사를 제외하고 증권거래법을 공부한 사람은 그 당시(80년대) 없었다. 그 당시 로펌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이었고, 외국인 투자는 활발했으나 금융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시기적으로 완전 개방은 아니지만 부분적 개방이 시작됐다. 어떻게 보면 자본시장 국제화 단계에 맞춰 사무실 업무의 포커스를 그 쪽에 맞췄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관여할 기회가 많았다.”

허창복 변호사는 성과에 비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드러내지 않은 조용한 성격에다 금융 및 증권 거래의 비밀보호 특성상 그의 역할이 외부에 알려지기가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국제금융과 각종 금융 거래에 참여해 본 인물이라면 허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로펌계에서는 유명하다.

그의 진가는 외환위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환위기 당시 국가의 운명을 가른 뉴욕 외채 연장 협상. 채권 연장안이 국회를 어렵게 통과했으나 국회동의서에 '원금' 보증은 명확히 규정되고 '이자' 보증에 대한 내용은 모호한 ‘허점’이 발생했다.

허 변호사는 당시 채권단의 한국측 법률 대리를 맡고 있었다. 이의를 제기하면 어렵게 성사된 외채 연장 딜은 물거품이 되는 상황. 그렇다고 국익을 위해 변호사의 역할을 포기할 수도 없다. 정부측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협조를 구해왔다.

고민 끝에 국회 의결을 다시 받는 대신에 경제부총리가 이자 보증도 포함해서 국회 동의를 구하였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내는 해결책이 도출됐다. 세종은 이를 근거로 채권단에 정부 원리금 지급보증이 유효하다는 법률의견을 제공했고, 결국 역사적인 뉴욕 외채 만기 연장안은 문제없이 종결될 수 있었다.


“딜이 깨질 것 같은 상황에서 고민 많이 했다. 그 당시 상황에서 국회 동의를 다시 받기가 어려웠다. 부총리의 공문을 통해 ‘백업’을 받고 나서 의견을 내 줄 수 있었다. 변호사가 일을 하다 보면 항상 규정에 맞다 안 맞다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그걸로 딜은 끝나지 않는다. 그 때 상황은 우리가 의견서를 안내면 연장이 안 되는 것이었다. 채권자 보호와 국가 이익 사이에서 그런 솔루션을 만들어 주는 게 로펌 변호사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런 게 보람이다.”

허 변호사는 신영무 창업자와 김두식 대표 변호사 등 몇 명을 제외하고 법무법인 세종에서 최 고참 변호사다. 사법연수원 11기 출신으로 연수원 졸업은 오히려 김 대표 변호사보다 빠르다. 군대 문제로 변호사 생활이 김 대표 변호사보다 늦다.

요즘은 주로 금융분쟁이나 금융기관 M&A에 주력하고 있다. 증권 및 채권 발행이나 기업공개(IPO) 딜은 후배 변호사들이 맡고 허 변호사는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는다.

최근 금융계 이슈가 됐던 국민은행의 아시아 최초 커버드 본드 발행도 허 변호사의 후배들 작품이다. 커버드 본드는 국내에 관련법이 없음에도 발행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 커버드 본드가 활성화되면 발행자는 조달 금리를 낮추고, 인수자는 신용보강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허 변호사는 “커버드 본드 마켓이 확대될 지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어쨌든 시장이 죽어 있는 상황에서 최초로 발행을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조달 코스트를 떠나 의미가 있다”며 “이번에 발행하면서 법률이 검토되고 서류를 만들어 놨기 때문에 나중에 시장 수요가 있을 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생활 25년여간 수많은 딜에 참여하고 금융시장의 변화를 실무에서 경험했다. 요즘 분위기는 어떤지 자문을 구했다.

“IPO 분야는 확실히 좋아지고 있는 듯하다. 금융위기가 지났느냐 안 지났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지난해 하반기 연기됐던 딜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일본 기업과 태국 기업 등까지 IPO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 기업 1~2곳은 새롭게 국내 상장 태핑을 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하나의 기류가 될 수 있다. 국내외 동시 공모도 하나의 추세다.”

만일 금융법무 시장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그 만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있을까. 국내 자본시장이 개방되기 전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파생상품으로 복잡해진 최근까지 허 변호사의 노력은 곳곳에 배어 있다. 그래서 따르는 후배 변호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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