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에 관한 동상이몽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 2009.05.12 15:20
'스승의 날'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대부분 '선물' 고민을 하게 된다. '촌지' 고민을 하는 학부모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촌지' 문제,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한 것일까.

◇당국 "많이 깨끗해졌다" = 지난 6일 교과부 공무원 2명과 서울시교육청 공무원 1명, 대학교수 2명이 저녁 식사자리를 가졌다. 1명을 빼고는 모두 초중고 교사 경험이 있는 이들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촌지 문제가 '안주거리'로 등장하자 한 목소리로 "요즘도 그런 교사들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과거에는 그런 일이 많았을 지 몰라도 요즘은 많이 개선돼 "몇 마리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일으키는 정도"라고 진단했다. 촌지 문제로 구설수에만 올라도 교직사회에서 아예 '매장' 당하기 때문에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촌지 문제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촌지 고발을 조사해 보면 주변 사람의 얘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부풀리거나, 자신의 아이를 더 우대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음해성 고발이 많다는 것이다.

◇학부모 "여전히 광범위" = 그러나 학무모의 인식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초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김미정(가명, 42) 씨는 "가장 큰 고민은 촌지를 주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주느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달 초등학교 담임에게는 30만원을, 중학교 담임에게는 갈비 세트를 보냈다.

김 씨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보통 3월말 처음 촌지를 건넨다고 한다. 개학 후 2주 정도는 학생 파악이 덜 돼 있기 때문에 첫 학부모 공개수업이 진행되는 3월말 전후가 적당하다는 것. 학부모와 상담하기를 좋아하는 교사에게는 직접 건네고, 아닐 경우에는 간식을 넣을 때나 청소 당번일 때 살짝 건넨다.

학년말에 촌지를 건네는 경우도 많다. 연말에 성의 표시를 하면 바뀌는 담임에게 아이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주기 때문이다.

교육열이 높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개인의 경험이나 교사 친구, 친척, 주변 학부모의 말 등을 종합해 보면 촌지는 광범위한 현상이라고 못 박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촌지 얘기는 솔직히 밝히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 점을 감안하면 더욱 더 광범위할 것이라는 게 김 씨의 생각이다.

◇교사 "일괄 매도는 억울"=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박상미(가명, 34) 교사는 촌지에 대해 "학교급별, 지역별, 공·사립별로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의 권한이나 영향력이 크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아이 성적이 나빠도 교사가 해줄 수 있는 게 특별히 없기 때문에 촌지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박 교사는 "완전히 없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요즘은 음료수를 사오거나 그마저도 안 사오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지역에 따라서도 편차가 크다고 한다. 공립학교 교사로 여러 학교를 옮겨다니다 보면 교육열이 높은 특정 지역의 경우 100만원이 넘는 명품백 선물이 '공공연한 비밀'인 반면, 어떤 지역은 집에서 손수 만든 음식이 한가득이라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촌지 교사가 100명에 1~2명 정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교사집단 아니라 어느 집단에서나 있는 것 아니냐"며 "요즘은 정으로 주는 선물도 매몰차게 거부해 학부모와 갈등을 빚는 사례도 많이 듣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 '김봉두'를 만난다면= 영화 속 선생 '김봉두'처럼 촌지만 밝히는 속물 선생을 만났을 경우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김미정 씨도 처음부터 촌지를 주지는 않았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전달하는 정도였지만 큰 아이 6학년 담임을 만난 후부터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담임은 아이가 '문제아'라며 수시로 엄마를 학교로 불러들였다. 모범생 소리만 들어온 김 씨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주변에서는 "집이 부유한데도 촌지를 건네지 않은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고 했고, 다른 엄마들은 촌지를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교육청에 민원을 넣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이가 해코지를 당할까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반을 바꿔도, 전학을 해도 늘 '고발 엄마의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는 주변의 조언도 한몫했다. 증거 발견이 쉽지 않은 촌지 사건의 특성상 시교육청이 결국에는 제식구 감싸는 쪽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김 씨는 결국 꾹 참고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촌지의 특성 때문에 전문가들은 '은밀하면서도 지속적이고 확실한' 감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교육단체의 한 관계자는 "촌지 감찰을 공개적이고 광범위하게 실시하면 전체 교사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는 반면 거두는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며 "무차별 폭격 방식보다는 은밀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스나이퍼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교사 시절 가장 감명깊었던 선물은 학부모의 감사편지였다"며 "교사는 학부모에게 촌지를 받지 않는다는 편지를 보내고, 학부모는 교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는 관행이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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