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돼지 "감기 걸린적 없을뿐이고"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 2009.04.29 12:24

'돼지독감' 용어 놓고 "적절치 않다" 주장 커져

"난 아프지도 않고, 남에게 옮기지도 않았고, 명의를 도용당했을 뿐이고…"

'돼지 독감(Swine Flu)' 공포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때 아닌 돼지들이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각국 증시에서 돈육 관련주가 연일 급락하고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처음 이 병이 발병한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돼지고기에 대한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도 북미지역의 살아있는 생돼지 수입을 잠정 중단키로 했다.

◇'돼지, 내가 뭘 어쨌다고?'=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 기구들이 이번 멕시코발 인플루엔자를 공식적으로 부르는 명칭은 '돼지독감(swine flu)'이다. 멕시코에서 이 신종 독감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WHO를 비롯한 국제 보건당국은 환자의 유전분석 샘플을 기초로 돼지 독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플루라는 용어가 인플루엔자의 준말이기도 하기에 '돼지 인플루엔자(SI)'라는 용어를 혼용하지만 엄밀히 구분해 병원균인 인플루엔자는 원인이고, 플루(독감)는 결과물이다. 이에 따라 이미 발병난 상태이기에 돼지독감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많다. 특히 돼지 표현에 대한 반발이 크다.

29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온 샘플을 건네받은 WHO 의학자들은 원인이 된 바이러스가 이종(hybrid) 돼지, 조류, 인간에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고, 특히 돼지에 주목했다.

돼지는 자신의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 닭, 오리 등 AI(조류독감)와 사람 독감 바이러스를 몸에 가지고 있으면서 2종 또는 3종간 유전자 교환을 해서 항상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다. 돼지를 독감바이러스 배합공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돼지가 이번 바이러스의 숙주로 여겨지는 것에는 경계를 표했다. 돼지에서 이번 바이러스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 신종 독감이 돼지에게 유독 오명을 준 것뿐만 아니라 향후 정책 입안자들로 하여금 적절치 않은 조치를 취하도록 오도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우려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돼지에서 이번 바이러스가 확인되지 않아서 돼지 독감이라고 불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돼지에서 인체로 전염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FAO는 "신종 독감이 돼지들 사이에서 전염되는지 여부와 어떻게 이 바이러스가 인간, 조류, 돼지 인플루엔자와 유전학적으로 연관됐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멕시칸 독감? 북미 독감? '애매하네'=FT는 돼지 독감이라는 용어가 계속 사용될 경우, 돼지 소비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WHO가 아무리 "돼지고기를 먹는 것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할지라도 소비자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AI)의 경우, '조류독감'이라는 단어가 소비자들에게 혐오감과 거부감을 심어줘 닭·오리 농가의 피해가 커진다는 이유로 언론의 협조를 얻어 AI로 변경했었다.

OIE 등은 돼지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돼지 독감을 '멕시코 독감' 혹은 '북미 독감'으로 바꿔서 부르길 권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우려는 여전하다. 특정 지역이 연계될 경우, 국가적으로는 부작용이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8~1919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스페인독감'이나 1968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홍콩독감'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오명으로 남아있다.

OIE는 "멕시칸 인플루엔자가 기원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하긴 하지만 북미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로 부르는 편이 낫다"며 "멕시코에 독감 발생국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이번 독감의 원인과 파급력에 대해 분석과 전망이 분분하다.

현재 사망률은 최대 감염자 보유국인 멕시코에서도 1% 미만이지만 아직도 감염이 확산되는 중이기 때문에 최종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FT는 "스페인 독감도 처음은 미미하게 시작했지만 치명적인 결과를 남기고 끝났다"며 "이번 인플루엔자로 얼마의 사람들이 죽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멕시코 독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끝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베스트 클릭

  1. 1 "몸값 124조? 우리가 사줄게"…'반도체 제왕', 어쩌다 인수 매물이 됐나
  2. 2 "연예인 아니세요?" 묻더니…노홍철이 장거리 비행서 겪은 황당한 일
  3. 3 [단독]울산 연금 92만원 받는데 진도는 43만원…지역별 불균형 심해
  4. 4 점점 사라지는 가을?…"동남아 온 듯" 더운 9월, 내년에도 푹푹 찐다
  5. 5 "주가 미지근? 지금 사두면 올라요"…증권가 '콕' 집은 종목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