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안방극장을 달궜던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가 종영한지 5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베바가 선사한 감동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베바'를 통해 한국 관객들도 이제 클래식 음악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일까. 2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09 머니투데이 봄 음악회'를 찾은 관객들의 표정은 여느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엄숙한 표정과는 달리, 가족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듯 편안했다.
이날 음악회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따뜻했다. 연주자들은 관객과 대화하길 원했고, 관객들은 음악을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연주회가 시작되고 베바의 주인공 강마에와 흡사한 외모의 지휘자 서희태 교수 (서울종합예술원)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강마에를 만난 것 마냥 환호했다. 음악회에서 만큼은 고단한 현실을 떠나 베바의 세계에 머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은 서씨가 자신들을 향해 '똥덩어리'라는 독설을 퍼부어도 개의치 않을 듯 했다. 아니 오히려 그런 독설을 원하는 듯 했다.
첫 곡인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서곡 중 캉캉'이 끝나자 관객들의 박수는 다소 빈약했고, 서 교수는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강마에와 달리 친근하고 부드러웠다.
강마에라면 "이렇게 작게 박수를 치다니, 도저히 여러분들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라며 독설을 퍼부었겠지만, 서씨는 "수준높은 관객이 되려면 박수소리도 커야한다"며 위트있게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1악장'이었다. 연세대 한영란 교수가 협주자로 나선 이날 연주는 본래 웅장한 느낌과 달리 다소 아기자기했다. 이날 오케스트라는 소규모로 편성된 탓에 금관파트가 받쳐주는 힘이 부족했고, 타악기도 다소 힘에 부친 듯 했다.
그러나 한 교수는 소편성 오케스트라를 배려한 듯 힘을 빼고 기교적인 연주에 충실했다. 이날 연주회장은 규모가 작은 탓에 무대와 객석은 지나칠 만큼 가까웠고 울림은 부족했다. 그래서 한교수의 정교한 터치는 오히려 객석에 효과적으로 전달됐다. 연주자들의 호흡과 피아노 페달 밟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객석에 전달됐고, 관객들은 이런 예기치 못한 소리들까지도 연주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강마에가 시장에게 묻는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시장이 답한다. "좋네요…아름답고요…(침묵)"
그리고 무대 위 오케스트라는 강마에가 시장에게 들려준 바로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 서교수가 관객들에게 물었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편안하게 답해 보세요."
예전 같으면 잘 다듬어진 근사한 답변을 내놓느라 주저했을 관객들이 이제 진짜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떠올라요.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대사와 어울리네요", "새끼를 잃은 어미 북극곰이 떠올라요" 등 기상천외한 답변이 쏟아졌고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후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등이 이어지며 2시간을 달려온 음악회는 막을 내렸다.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느라 입구 근처에 서있던 20대 여성 관객이 멀리 앞자리에 앉아있던 친구를 발견하곤 인사를 건넸다.
"오늘 어땠어?"
"진짜 좋았어. 최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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