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머니게임 vs 생존게임 구도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 2009.04.19 11:20

정부 일희일비하지 말고 신중한 접근 요구

#1.강남구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L씨(40세). 그는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500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인터넷논객 미네르바의 글을 읽고 ‘시장에서 한번도 돈을 벌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 사람까지 시장의 종말을 얘기한다면 오히려 기회라는 직감이 들었다. 코스피지수 900이 무너진 다음날인 지난해 10월28일 H기업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당기순익이 300억원이 넘고 기존의 현금보유액만 300억원인 회사의 시가총액이 680억원에 불과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2가 안 됐다. 이 종목은 지난주 3배의 이익이 났다

#2.일산에 거주하는 K씨(35세)는 정반대의 경우다. 미네르바의 전망을 믿고 코스피지수 900이 깨지던 날 수익률이 -50%가 넘던 거치식 펀드를 해지했다. 500 근처에서 재가입해 1000까지 보유해 원금을 회복할 요량이었다. 적립식 펀드는 ‘납입을 중단하라’는 은행 직원의 권유로 더 넣지 않았다. 그는 최근 은행 직원이 적립식 펀드에 다시 입금할 것을 권유를 해오자 상투 걱정에 판단을 못 내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적자를 본 회사는 임금동결을 선언했고 정리해고설도 돌고 있어 이래 저래 가슴이 답답하다.

한국경제가 ‘머니게임의 장’과 ‘생존게임의 장’으로 나뉘었다. 주식,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서는 화려한 머니게임이 펼쳐지고 있는데 실물경제에서는 실업자가 100만명에 육박해 가고 한계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자산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해지면서 개인간 자산격차는 커지고 있다. 한쪽에선 스마트머니가 단기간에 급격한 수익률을 내고 있는 사이 또다른 쪽에선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동결과 반납 등으로 실질 소득도 감소하고 있다. 엇갈리는 경제 상황과 지표 속에 정부가 정책방향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자산시장에 만개한 봄, 유동성의 힘

코스피종합지수는 지난해 10월27일 892.16의 장중 저점을 찍은 뒤 지난 17일 1329.00으로 50% 가까이 올랐다. 지난 15일 기준 고객예탁금은16조472억원으로 2007년 7월18일의 15조7694억원 종전 최고기록을 갈아 치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억원 또는 1만주 이상을 한꺼번에 거래하는 일평균 '대량주문' 건수는 이달 들어 3월에 비해 금액 기준 94%, 주식수 기준 41%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서울 재건축 아파트가격은 지난주 0.73% 올라 올해 최고의 가격 상승폭을 기록했다. 강동,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강남 집값은 2006년 정점에 비해 93%까지 가격을 회복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3조3000억원 늘었다. 이는 부동산 버블이 정점에 달했던 2006년 11월 이후 최대 규모의 증가세다.

세계 각국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 중 일부도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3월초부터 현재까지 외국인이 증시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총 4조922억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은 2월말 기준 단기 부동자금규모는 784조7000억원이며 현재 800조원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800조원은 과잉유동성이라며 한번 자금이 돌기 시작하면 어떤 상황이 올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물은 아직도 겨울

통계청이 공개한 3월 취업자수 1년전보다 19만5000명이 줄어 외환위기 때인 1999년 3월 이후 가장 많이 감소했다. 실업자수는 95만2000명으로 100만명 진입을 눈앞에 뒀고 실업률은 4%대에 들어섰다. 고용이 후행지표라는 점을 감안해도 통상 3월이면 회복되던 예년과 다른 모습이다.

설비투자나 건설수주 등도 부진하다. 2월중 설비투자와 국내기계수주는 각각 -21.2%와 -28.8%로 전월(-25.9%, -46.9%)에 비해 감소세가 완화됐지만 이중 상당 부분은 운수장비 투자와 공공부문 기타 수송용 기계 수주의 일시적 증가에 따른 것으로 판단했다.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민간 및 건축 부문의 수주 부진이 지속되며 전월-15.0%에 비해 -20.7%로 감소폭이 확대됐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올 경제성장률이 -1.9%라고 예상했고 한국은행은 -2.4%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오는 22일 세계 경제 침체가 유달리 심각하고 회복은 느릴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인 가운데 미국의 3월 산업생산 지수와 주택착공은 각각 전월대비 1.5%, 10.8% 하락했고 영국은 IMF 구제금융설이 나오고 있다.


자산격차 확대…정부정책도 혼선

이처럼 머니게임과 생존게임이 별개로 진행되는 가운데 경제 주체들의 자산격차도 커져 가고 있다.

글로벌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부채가 많고 신용이 좋지 못했던 기업들이 헐값에 자산을 처분하거나 파산에 내몰리고 대부분의 펀드가입자들이 자산감소를 경험해야 했다. 머니게임에 끼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고달픈 생존투쟁을 해야 했던 일용직, 임시직, 비정규직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이 같은 자산격차는 그대로 소비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월 롯데 백화점 매출이 8.3%, 신세계 백화점 매출이 4.4% 느는 등 지난 1분기 백화점의 매출은 1년 전보다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이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해외명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 증가했을 정도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이용하는 대형마트 매출은 1.9% 감소했다.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상반된 신호는 정부가 정책방향을 잡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폐지는 여당 내에서 의견이 나뉘었고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는 강남 재건축 집값이 뛰면서 신중론이 우세해졌다.

신용경색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저금리 지속으로 부동산 담보대출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국민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은 주택 담보대출을 옥죄기로 했다.

정부 신중한 스탠스로 접근해야

윤증현 장관이 최근 "글로벌 침체가 시작된 이후 6개월간 내부 유보금으로 버텨 온 기업과 일부 금융기관에서 부실이 서서히 현재화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진다"고 말했듯 시장에선 언제까지나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이 따로 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은 “자산시장과 실물경제의 불일치가 어느 지점에선 합치할 때가 있을 것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미국의 수요가 아직 뒷받침되지 않고 있고 중국의 경기부양도 하방경직성을 높일 뿐 방향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일부 자산시장의 급등이나 경제지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실물경제 상황에 대응해 기존의 기조를 이어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좀 더 추이를 지켜 볼 필요가 있다”며 지표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유동성을 풀면서 금리를 많이 낮춰 놓아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영향을 줬고 결과적으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금리를 올리거나 유동성 공급을 축소하면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실업"이라며 "급격히 소득이 저하되고 특히 자산이 없는 사람들이 사회불안 요인이 될 가능성 있으므로 기업들이 최소한의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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