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는 세금대통령, 아들은 조세피난처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 2009.04.17 08:34

노건호씨의 아쉬운 노블리스 오블리주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아들 건호씨(오른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2005년, 국세청은 론스타가 스타타워 빌딩을 매각하고도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점을 문제삼아 론스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였다.

론스타는 조세피난처인 벨기에에 세운 페이퍼컴퍼니가 스타타워 빌딩 소유주란 점을 들어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지만 국세청은 실질적인 영업이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며 과세했다.

외국자본의 탈세에 엄격하게 국정을 운영했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와 조카 사위 연철호씨가 조세피난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British Virgin Islands)에 지난해 2월 자금을 투자해 창업투자회사를 세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설립자금은 박연차 회장이 건넨 500만 달러였다는게 검찰 조사 결과다.

검찰은 특히 노건호씨가 대주주인 엘리쉬앤파트너스가 O사와 A사 등 국내 벤처회사에 우회 투자했다고 지난 15일 확인했다. 이중 A사 대표는 권양숙 여사의 동생 권기문씨다.

구체적인 투자내역이 밝혀지지 않아 속단할 수 없지만 외견상 '검은머리 외국인'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국내에 투자하는 행태와 같다.

아직까지 박 회장이 건넨 돈의 성격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운 것이 불법이거나 탈세, 혹은 절세를 위한 차원이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그러나 국내에서 창투사를 세워 국내 기업에 투자해 정당하게 세금을 내도 되는데 굳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워 국내에 투자했기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조세피난처는 탈세나 절세 목적으로도 활용되지만 그 이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는 점을 악용해 불투명한 돈의 거처로 애용돼왔고 이 때문에 투기자본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지난 2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를 강화키로 합의하고 조세피난처 블랙리스트를 공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옛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임종인 변호사(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투기자본의 온상으로 대표적인 곳이 버진 아일랜드, 케이먼 군도, 룩셈부르크, 라부안(말레이시아),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 6곳이라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한 기고글에서 "투기자본의 대표적 탈세 수법이 이중과세지역인 버진 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수의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은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웠다고 절세 또는 탈세가 목적이라고 단정할 수 어렵다"며 "오히려 국내에 세워도 됐을 창투사를 조세피난처에 설립했다면 자금출처의 정당성 여부를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20에서 조세피난처를 강력 규제하는 것은 탈세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국제적으로 정체 불명의 검은 돈이 조성되거나 세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G20 의장국인 한국의 전직 대통령 아들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웠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조세피난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BNP파리바 등 자국의 금융기관장을 불러 조세피난처에서 영업 중단 또는 축소 등 솔선수범을 요구했을 정도"라며 "대통령의 아들이라면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하는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재벌 2세인 삼성의 이재용 전무나 현대기아차의 정의선 사장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우고 국내에 우회 투자했다면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나고 비난여론도 비등했을 것"이라며 "불법은 아니라 해도 재벌 2세 이상으로 대통령 아들의 사회적 책임도 크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아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세금폭탄'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1가구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에게 '징벌적 세금'을 부과해온 반면 그 아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조세피난처에 투자회사를 세웠다는 점도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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