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재보선은 집권 여당에 불리하다. '정권 심판론'이 민심을 파고들기가 쉽다. 올해처럼 경제 한파가 불어닥친 상황이라면 더 그렇다. 원외인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는 울산 북구 출마를 일찌감치 포기하겠다고 밝힌 것도 야당의 정권심판론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엔 여건이 다르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결국엔 탈당을 하고 전주 덕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데다 '노무현 게이트'라는 허리케인급 태풍이 몰아쳤다. 이 바람에 현 정권 심판론은 쑥 들어가고 대신 전 정권 평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수록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정치권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박희태 대표의 불출마 선언의 명분으로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이슈를 선점한 데 이어 민주당에 터진 악재로 '어부지리'까지 얻었다. 당내에선 "이 정도면 상쾌한 출발"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으로선 첩첩산중이다. 정동영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분당 사태까지 걱정하는 한편 노무현 전 대통령과 확실한 '선 긋기'까지 해야 하는 판이다. 한나라당에 맞설 선거 전략이 아니라 호남 텃밭 지키기에 골몰해야 하는 형편이다.
정 전 장관과 노 전 대통령이 화제에 오를수록 민주당의 '정권심판론', '거대 여당 견제론'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과 무소속 의원간 2파전이 예상되는 전주 덕진과 완산갑을 제외한 인천 부평을·경북 경주·울산 북구 등 3곳에서 승리를 점쳐볼 수도 있다. 사실상 재보선에서 완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소록소록 나온다.
물론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낸 것은 아니다. '노무현 게이트'로 이어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역풍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까지 '박연차 리스트'와 관련해 소환되거나 구설수에 오른 여권 정치인이 적지 않은 만큼 한나라당도 검찰의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노 전 대통령에 동정 여론이 전 정권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방향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여기에 친이(친 이명박) 정종복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친 박근혜) 정수성 무소속 후보가 맞붙는 경주에서 계파 갈등이 재연될 경우 한나라당도 민주당 못지않은 '내홍'에 휩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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