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자 한국물 투자 제한, 국부유출 '논란'

더벨 이승우 기자 | 2009.03.31 17:37

전문가들 "정책 효과보단 부작용만"..연간 3000억원 유출 '추정'

이 기사는 03월30일(15:14)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해외채권(이하 한국물)에 내국인이 투자할 수 없도록 한 규제 때문에 아까운 국부(國富)가 유출된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만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다 보니 고금리로 외화를 조달할 수밖에 없고 내국인이 한국물에 투자하려면 유통시장에서 비싼 값에 사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국 투자자들은 해외 발행시장에서 한국물을 상대적으로 싸게 매입한 후 유통시장에서 국내 투자자들에게 되팔아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해외로 유출되는 돈이 연간 2억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주자 발행시장 참여 제한, 고금리 해외債 발행 불가피

금융감독규정은 거주자가 한국계 일반기업이 발행한 해외채권을 유통시장에서는 사들일 수 없게 하고 있다. 주관사나 인수사 혹은 브로커를 한 번 거친 이후 국내 투자자(전문투자자)들이 매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발행자들은 금리 협상 과정에서 주관사(신디케이트 데스크·세일즈)들이 모아온 외국인 투자자들하고만 금리 협상(프라이싱)을 하게 된다. 모집된 투자자의 절대 규모가 적을 뿐 아니라 해당 기업의 사정을 잘 아는 국내 투자자들이 배제되면서 금리 인하 효과가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손해를 보는 금리가 최소 0.50%, 최대 1.00%포인트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예를 들면, 포스코는 지난 20일 7억달러어치의 해외 채권을 8.95%에 발행했다. 채권시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당초 예상했던 수준보다 0.50%포인트 이상 낮게 발행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참여하게 됐다면 7%대로 발행할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포스코는 세계적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어서 해외채권 발행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포스코의 상황을 잘 아는 국내 투자자들이 참여했다면 9%에 육박하는 금리는 납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7%대 금리라도 충분히 참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가 지난 26일 국내에서 발행한 같은 만기 원화 채권의 발행 금리는 5.56%. 달러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도 3%포인트 이상은 큰 차이다. 딱 그만큼은 아니어도 이같은 사정을 아는 국내 투자자들이 참여했다면 외화채권 발행 금리도 내려갈 수 있었던 셈이다.

포스코 뿐만 아니다. 정부 보증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하나은행도 발행시장에서의 거주자 참여가 제한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S&P로부터 국가등급(A)보다 낮은 등급(A-)을 받았다. 발행금리 상승 요인이다.

외국인 '배불리기'..단기 차익 남기고 국내 투자자에 넘겨

어쩔 수 없이 높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다 보니 투자자들은 혈안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한국계 해외채권은 큰 인기다. 이미 국내에서도 연기금과 보험회사 뿐 아니라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한국물 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외국 투자자들만이 고금리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발행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며칠 사이 이득을 보고 국내 투자자들에게 되파는 형식이다.

포스코가 이달 발행한 해외채권의 가산금리(미국 국채 기준)는 유통시장에서 이미 1.10%포인트 가량 급락(가격 상승)했다. 새 채권 발행시 투자자들에게 얹어주는 프리미엄이 대략 0.30%포인트인 것을 감안해도 과도하게 하락했다. 발행시장에서 포스코 채권을 외국인들이 사들여 한국계 투자자들에게 넘겼다면 벌써 1.00%포인트 이상의 차익을 누린 셈이다. 이 과정이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 벌어졌다.

포스코를 포함, 올해 한국계 기업들이 해외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규모가 2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행금리 대비 낮아진 유통금리를 최대 1.00% 포인트라고 생각하면, 최대 2억달러가 외국인들의 차익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셈이다.

국책은행과 공기업 채권의 경우, 거주자의 발행시장 참여가 허용되고 있으나 지난 1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채권 논란(정부 지원 외화자금으로 한국물 투자)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참여가 사실상 제한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정부, 외채 증가+정부 공급 외화 유용

이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로 단기 외채 증가를 지목하고 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정부가 은행에 지원한 외화로 국내 금융회사들이 '돈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행시장과 유통시장 참여를 차별화하는 논리로는 맞지 않다는 게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첫째, 단기 외채증가는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구별해 놓아도 별반 차이가 없다. 한국계 투자자들이 한국물을 사들이게 되면 은행을 통해 외화자금을 빌린다. 통화스왑시장에서 많은 외화 자금을 빌리는데 외국계 은행이 대부분 거래처다. 외국계 은행은 빌려준 외화를 채우기 위해 본국에서 단기 차입 형태로 돈을 가져온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의 단기 외채로 잡히는데 한국계 투자자들이 한국물을 발행시장에서 사든, 유통시장에서 사든 똑같은 구조로 단기 외채는 증가한다.

둘째, 정부가 공급하는 외화자금으로는 한국물을 투자하는 곳에 곧바로 쓸 수 없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 이후 정부가 국내 은행에 공급한 외화자금의 만기는 3개월 혹은 최장 6개월로 한국물의 만기가 최소 3년 이상인 것과 너무 차이가 있다. 3개월 만기 자금을 계속 연장(롤오버)하면서 굴릴 가능성이 있지만 희박하다. 이 역시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을 구별한다고 그 희박한 가능성을 차단할 수도 없다.

국제금융 한 전문가는 "한국계 기업은 비싼 가격에 채권을 발행해 외국계 투자자들에게 높은 이자를 주고 국내 투자자들은 더 비싼 가격에 채권을 사들여 손해를 본다"며 "국가적으로 보면 국부의 이중 유출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한국계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어디서 사고 어디서 팔든 시장 논리이기는 하지만 국가 정책상으로 이를 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아서 정책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만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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