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왕국' 꿈꾸는 롯데

머니위크 지영호 기자 | 2009.03.27 10:03

[머니위크]술판은 물밑 전쟁 중

M&A계의 '양치기 소년', 롯데의 '소맥(소주+맥주)왕국'의 꿈이 일단 미뤄졌다.

지난 2월 ‘처음처럼’의 두산주류BG(Business Group)를 인수해 소주라는 강력한 날개를 얻은 롯데는 곧 이어 오비맥주를 인수해 나머지 날개를 달고 주류업계의 강자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을 분명히 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롯데는 하이트-진로그룹과 견주는 명실상부한 주류업계 2인자로 단숨에 올라설 수 있다.

그러나 롯데의 꿈은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발목이 잡혔다. 지난 3월12일 블룸버그통신은 오비맥주의 최대 주주인 벨기에의 AB인베브가 롯데를 탈락시켰다고 전했다.

AB인베브는 오비맥주 인수 가격으로 3조원을 기대했다. 반면 롯데는 이 가격의 절반인 1조5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가 가격에서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EP)와 콜버그크라스로버츠(KKR) 등 2개 사모펀드에 밀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편 롯데의 탈락소식이 전해지자 일부에서는 롯데가 회사를 신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도한 투자로 오비맥주 인수를 추진하느니 차라리 새로운 맥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1조원가량이면 오비맥주 정도의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직까지 인수전에 최종 탈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인 신설’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외침, 이번에도 성공할까?

최근 롯데가 두산주류BG와 오비맥주 인수전 참여에서 보인 모습은 '양치기 소년'에 견줄 만하다. M&A의 특성상 비밀유지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M&A 부인의 강도가 너무 강하다 보니 혼선이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롯데의 혼선 전략은 황각규 롯데그룹 부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황 부사장은 지난 12월 초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롯데는 두산주류 인수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 “두산 측의 매각금액이 너무 비싸다”고 토로했다. 황 부사장은 그룹 내 인수합병 업무를 총괄하는 핵심 관계자라는 점에서 매우 비중 있는 발언이었다.

이보다 앞선 11월 말 롯데칠성은 공시를 통해 '오비맥주 인수를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롯데칠성은 일부 언론의 오비맥주 인수 추진 보도와 관련해 증권선물거래소가 요구한 조회공시에서 '검토한 바 없다'고 답했다. 황 부사장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M&A 논의인데) 내가 모르는 일도 있나. 자금도 없고 관심도 없다"며 일축한 바 있다.

그러나 롯데는 두산주류 인수에 성공하고 오비맥주 입찰에 참여했다. 이 와중에 황 부회장의 발언은 입찰 참여와 인수 소식에 묻혀 버렸다.

최근 롯데가 신규법인 설립에 대해 ‘전혀 검토한 바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M&A의 달인’으로 통하는 롯데의 이 같은 반응을 두고 ‘AB인베브의 눈치 보기’로 판단한다. 일단 오비맥주 인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다만 최종적으로 롯데가 오비맥주를 놓칠 경우 회사를 신설할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소맥의 꿈’으로 표현되는 주류업계의 강자 칭호는 맥주 없이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맥주 회사 신설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오비맥주 인수와 관련해 AB인베브를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조용한 마케팅으로 간다


지난 3월3일 '처음처럼'이 처음으로 두산이 아닌 롯데의 이름으로 출고됐다. 그러나 애주가들조차 '처음처럼'의 새 주인을 잘 알지 못한다. 롯데는 처음처럼의 새 주인이 됐지만 바뀐 사실에 대해 특별한 마케팅을 펼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처럼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이 소주가 롯데의 제품이라는 것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메인 하단에 쓰인 ‘COPYRIGHT@2009 LOTTE LIQUOR BG. LOTTE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라는 깨알 같은 권리 내용이 바뀐 주인을 겨우 알려줄 뿐이다.

이뿐이 아니다. 대형 포털 네이버에는 처음처럼'의 홈페이지가 여전히 두산주류BG로 올라와 있다.

일부에서 제기됐던 모델 교체도 아직까지 요원하다. 롯데주류는 두산주류 시절부터 메인 모델로 활동했던 가수 이효리를 계속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효리의 계약 종료시점은 6월 말이다.

한마디로 롯데주류BG의 작전은 조용한 변화다. 롯데는 임원을 제외한 직원의 고용 승계를 3년간 보장하는 한편 롯데주류BG의 대표이사로 두산주류BG 출신인 김영규 부사장을 선임했다. 원할한 조직운영과 인수 잡음을 없애기 위한 인사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롯데의 침묵에 긴장하는 업계

처음처럼이 롯데 품으로 간 다음 바뀐 것이 있다면 본사 이전 정도다. 동대문 두산타워 빌딩에서 주류업계의 전당인 강남의 역삼동 3M타워로 옮겼다. 이곳은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타워 뒤편으로 서초동 롯데칠성 부지와 가깝고 진로 본사와는 두블록 거리다. 위스키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와 페르노리카코리아와도 지척이다.

롯데가 대한민국 술 소비량 1번지인 강남에 터를 잡고, 경쟁사들 틈바구니에서 정면 도전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주류업계의 결투가 사실상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일단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그룹은 롯데의 도전에 대해 '자신 있다'는 모습이다. 최근 김지현 하이트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어떤 누가 시장에 들어와도 자신 있다. 롯데의 유통망은 강점이지만 주류사업은 다르다. 주류도매상을 통한 유통은 그동안의 신뢰와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윤종웅 진로 사장도 자랑스런 충청인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수요를 창출하면서 경쟁하면 된다"며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롯데가 오비맥주를 인수한다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롯데 역시 맥주회사를 손에 쥐고 주류업계의 큰손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최근 진로가 알코올 도수를 18.5도로 1도 낮춘 리뉴얼 'j(제이)'를 선보인 것도 롯데의 마케팅 공세에 앞서 선점효과를 누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롯데의 마케팅이 시작도 안 됐건만 부산ㆍ경남지역은 벌써부터 긴장상태다. 롯데의 그룹 연고지가 부산인데다 막강한 유통구조를 무기로 지역의 소주 점유율을 올리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부산-대선(82%), 경남-무학(74%) 등 지역 소주의 강세가 월등한 이곳에서 롯데의 처음처럼(각각 0.47%, 0.57%)이 얼마나 선전할 지가 관심사다.

지금은 일견 조용하지만 공수전환이 임박한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업계가 롯데의 오비맥주 인수 여부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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