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 해외사모펀드에 넘겨야 하나

머니투데이 원종태 기자 | 2009.03.18 09:36

오비맥주 인수전 4년전 진로 소주 매각 복사판

2005년 3월1일 소주업체 진로 매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에 파이낸셜타임즈는 한국 소주업체 진로의 기업가치가 36억달러(당시 환율 기준 3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당시 일반적인 추정치 25억 달러보다 1조원이상 높은 금액이었다.

FT는 그때 진로 매각 주체였던 골드만삭스를 인용해 그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 때문에 진로 몸값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매각가격을 흘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 하이트맥주는 경합 끝에 3조4000억원을 주고 진로를 인수했다. 당시 하이트맥주 임직원들은 오랜 인수경쟁의 승자가 된 것을 자축했다.

그러나 정작 더 기뻐한 곳은 골드만삭스였다. 골드만삭스는 1997년 진로 채권을 단돈 2740억원(당시 가치 1조4000억원)에 사들인 뒤 3조4000억원을 받고 하이트맥주에 팔았다. 매각차익만도 1조2000억원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는 이 차익에 대해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최근 오비맥주 매각 과정이 등장인물만 바뀐 채 비슷한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높은 매각금액이 외신을 통해 흘러나와 인수 후보자간 경쟁을 부추기는 기법이 흡사하다. 특히 천문학적 매각 차익에 대해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것도 똑같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벨기에에 본사를 둔 오비맥주 최대주주 인베브가 추진 중인 오비맥주 매각이 4년 전 골드만삭스의 진로 매각 복사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초부터 외신을 통해 "오비맥주 매각가격은 20억∼25억 달러가 될 전망"이라거나 "롯데그룹은 오비맥주 인수전에서 탈락했다"는 등의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비맥주 인수에 관심을 보여 온 롯데그룹은 몹시 당황해하면서 진위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에선 일종의 롯데 압박 작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최근에는 어피니티 에쿼티 파트너스(AEP)와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 등 외국계 펀드 2곳만 기업실사를 통과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특히 인베브는 1조원이 넘는 매각 차익이 생겨도 세금을 내지 않고 고스란히 차익을 챙길 수 있다. 지난 1994년 한국-벨기에 간 조세협약으로 부동산 양도차익 이외에는 양국 기업에게 과세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인베브는 1998년이후 오비맥주 지분 100%를 인수하는데 총 1조1500억원을 투자한 반면 유상감자(1500억원)와 배당(2000억원)으로 3500억원 가량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순 투자금액은 9000억원 정도로 2조원이 넘는 인수가격을 받을 경우 매각차익만 1조원이 넘는다.

◇국민 맥주, 외국자본 '전유물'서 벗어나야

동양맥주 시절부터 오랜 세월 애환을 함께 해온 소비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진로 소주에 이어 오비맥주마저 또다시 외국 자본의 머니 게임 대상이 될 조짐을 보고 실망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담보로 영업을 하는 메이저 맥주기업이 사회공헌 등에 관심이 없는 사모펀드에 팔려 몇 년마다 주인이 바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단순 매각차익이 목적인 해외 사모펀드가 전국적인 영업을 펼치는 오비맥주를 인수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며 "좀 더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책임있는 기업이 인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주류면허 볼모로 삼아선 안돼

더욱이 인베브가 매각차익을 높이기 위해 '주류 제조면허' 프리미엄을 지나치게 높게 부르고 있어 과점적 주류면허를 유지해주고 있는 국세청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베브가 인수가격을 20억달러 이상 요구하는 것은 주류 제조면허 신규 취득이 어려워 시장 진입장벽이 워낙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 제조면허 취득 등으로 맥주시장 진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오비맥주 인수가격이 부풀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국세청은 맥주시장이 반드시 '하이트-오비' 맥주 양강 체제로만 유지돼야 하는 원칙도 없다고 강조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맥주 제조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맥주시장 진출을 원한다면 고용창출 등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주류 제조면허 추가 발급을 신중히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오비맥주, 고용창출 등 경제효과도 감안해야
경기불황에 따라 해외 사모펀드가 오비맥주를 인수할 경우 고용창출 등 경제적 효과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해외 사모펀드가 오비맥주를 인수한다면 단기적인 수익성 개선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설비투자와 신규채용 보다는 비용절감과 인력 구조조정 등 긴축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오비맥주 노조측은 "인베브 인수 이후 비용절감 경영으로 생산시설이 상당히 노후화되고 있다"며 "인베브에 매년 시설 재투자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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