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서 남주는' 구조가 만든 VISA 횡포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오수현 기자 | 2009.03.05 10:51

'비자카드 사태' 왜(상)- 세계 2위시장 한국서 수수료 챙기기

- 덩치만 키운 토종업체, 해외 결제망은 부실
- 中서 수수료 없앤 비씨처럼 제휴망 필요성

신세계백화점이 1969년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를 도입한 이래 40년이 흘렀다. 지난해 신용카드 사용액은 300조원을 돌파했고 현재까지 발급된 카드는 1억장을 눈앞에 두고 있다.

외형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도 컸다. 정보기술(IT)을 접목한 한국 신용카드업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의 카드결제뿐 아니라 신분증기능을 가진 신용카드 등 카드는 이미 생활필수품이 됐다.

그런데도 해외에선 한국을 여전히 후진국그룹으로 분류한다. 덩치만 컸지 대외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비자카드가 한국에서만 결제수수료를 올리려고 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 카드사들이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비자카드의 횡포=비자코리아는 지난해 12월1일 국내 카드사들에 보낸 공문에서 "해외 결제수수료(1.0%)를 2009년 7월1일부터 1.2%로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현지 시장상황에 맞게 수수료를 적용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한국에서만 요율을 인상한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더욱이 국내 사용 수수료율도 0.03%에서 0.04%로 높인다고 통보하자 국내업계는 '횡포'로 받아들였다.

국내 카드고객은 비자 및 마스타카드 1장당 연 1000~1500원의 수수료를 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발급장수가 8000만장인 비자카드가 요율을 조금만 올려도 소비자 부담은 수백억원 늘어난다.

국내 카드사들은 "사전조율 없이 한국에만 차별적인 조치를 한 이유를 알기 어렵다"며 반발했고 금융당국은 진위 파악에 나섰다. 장형덕 비씨카드 사장은 비자카드 고위자문위원회 위원직에서 사퇴하고 비자카드 발급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극심한 반발에 놀란 비자코리아는 수수료 인상계획을 철회했다. 제임스 딕슨 비자코리아 신임 사장은 지난달 18일 "수수료 인상은 전 경영진이 발표한 것"이라며 발을 뺐고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시장과 동일한 수수료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료 인상 포기했나=비자카드 측은 시기를 두고 수수료 인상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비자카드가 지난해 기업공개(IPO)를 계기로 수익 증대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비자카드는 1979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중심으로 설립된 일종의 신용카드협회였다. 미국 전역에서 신용카드를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가맹점 및 결제망 관리를 전담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비자는 이후 세계 170여곳에 진출해 카드 사용기반을 넓혔다. 국내에서는 78년 외환은행이 해외용 비자카드를 처음으로 출시했고 90년 비자코리아가 설립됐다. 비자카드의 국가별 매출규모에서 한국은 미국에 이어 2위다.

비자카드는 해외결제 인프라는 물론 다양한 상품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국내 카드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해외리조트 할인, 골프여행 패키지 등의 상품은 비자카드 서비스에 착안한 것이 많다. 비자카드는 국내 카드사들로부터 제휴회비를 받아 사업을 벌인 후 남는 것은 환급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익보다는 카드산업의 발전을 우선시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뉴욕증시에 상장(비자인터내셔널)하면서 초점이 수익 우선으로 바뀌었다. 비자카드는 IPO를 전후해 각국 포트폴리오를 점검했고 세계 2위인 한국이 시장규모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1월 비자코리아 경영진이 전면교체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보인다. 김영종 사장과 권영욱 부사장 등 임직원의 3분의1이 일괄사퇴했다. 노조 구성 등도 한 원인이 됐으나 수익성 개선을 원하는 미국 본사의 입김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경영진은 국내 점유율뿐 아니라 매출도 10배가량 늘리는 성과를 냈으나 이번 수수료 인상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토종 대항마 육성을"=국내에서 발행되는 해외결제카드 중 비자카드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경쟁사(마스터카드와 아멕스카드) 카드 사용을 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들의 영업방식도 비자카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토종브랜드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결제망을 갖춘 카드사가 나오면 비자 등의 독주를 막고 해외 사용 수수료율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토종 대항마로는 해외 브랜드와 성격이 유사한 비씨카드가 꼽힌다. 비씨카드는 82년 은행들이 공동으로 설립한 신용카드협회로 출발, 전국 250만개 가맹점 및 은행영업점망을 보유하고 있다. 실질회원은 2300만명을 넘는다. 자체 카드도 발급하지만 주로 신용카드 결제망을 운용하는 데 주력한다.

비씨카드는 중국시장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4월 중국 유일의 카드사인 은련과 제휴, 고객들이 중국에서 쉽게 카드를 쓰도록 했다. 비자카드나 마스타카드에 낸 해외결제 수수료(사용액의 1.0%)를 절감하게 됐다. 비씨카드 관계자는 "은련과 직접 제휴함으로써 그간 부과된 각종 수수료가 없어졌다"며 "고객은 물론 카드사에 비용절감 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비씨카드는 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 동남아시아 일본까지 결제망을 확장할 계획이다. 비자·마스타카드를 발급받지 않고도 각국에서 카드를 사용하도록 한다는 목표다. 다만 풀어야 할 숙제가 적잖다. 은행권 중심의 회원사를 삼성, 현대, 신한, 롯데 등 전업계로 넓혀야 한다. 제대로 된 해외결제 제휴망을 구축하는 것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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