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비겁한 잡셰어링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 2009.03.02 12:51
경제위기 전 미국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보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포브스지 선정 미국 500대 기업 CEO의 평균소득은 연간 1500만달러를 넘었다. 수억 달러의 스톡옵션을 별도로 챙겼다.
 
최고경영자는 회사를 떠나도 돈이 마르지 않았다. 수억달러의 퇴직수당을 받았고, 매년 일정 수익이 보장되는 컨설팅 계약을 했다. 자동차 제공 혜택과 심지어 홈시큐리티서비스, 골프장 이용비용, 회사 비행기 무료 사용권까지 받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혜택을 누렸지만 그들은 지난달 초 오바마 대통령이 월가 경영진의 최고 임금을 50만달러로 제한하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이 조치가 반시장적이라는 주장부터 월가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빠져나갈 것이라는 협박성 반발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실증 분석 결과 임원 보수와 경영실적의 연관성은 아주 미약하다는 점이다.
 
또 같은 업종에서 지명도가 높고 엄청난 보수를 받는 CEO와 덜 알려져 있고, 업계 평균 수준의 보수를 받는 최고경영자 간에 경영실적 차이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최고경영자들의 천문학적 연봉과 보상은 거품이고, 끼리끼리 나눠먹은 도덕적 해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미국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앞으로 입사할 대졸 신입사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이른바 `대졸초임 삭감을 통한 잡셰어링'이다.
 
정부 제의로 시작돼 공기업 금융기관에 이어 마침내 30대그룹도 동참을 선언하고 나섰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외환위기 당시의 금 모으기 운동처럼 국가 브랜드로, 시대정신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시대정신으로 승화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아직 입사도 하지 않은 신입사원들의 임금만 깎는 것으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너무 비겁하다.
 
왜 신입사원만 대상이 돼야 하는가. 경제단체들은 대졸초임이 너무 많이 올라 기업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 직원들의 임금도 당연히 깎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두려웠을 것이다. 총파업 등 노조의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쇠고기 파동 때 만난 촛불의 유령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을 수도 있다.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가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임금을 깎아서 일자리 나누기를 하려면 기존 직원들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 노조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총파업을 한다 해도 말이다. 이번에는 많은 국민이 촛불을 켜들고 광화문 네거리로 나가 이명박 정부를 지켜줄 것이다.
 
기업 경영진도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미국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도 공기업과 금융사, 주요 대기업 경영자의 보상수준은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대단하다.
 
실제로 외환위기를 극복한 후 '월급쟁이 재벌'은 매년 적지 않게 탄생했다. 이들이 지금 와서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한다며 임금을 동결하거나 신입직원들처럼 10~20% 삭감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그건 너무하다.
 
이런 식으로 하다간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경영진의 최고 연봉을 제한해 이를테면 1억~2억원 수준으로 억제하자는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다. 신입사원만의 연봉 삭감으로 세대간 전쟁을 치르기보다 경영진의 연봉을 엄격히 제한하는 게 사회적 비용이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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