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정부에 배신당했다"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임동욱 기자, 박상주 기자 | 2009.03.02 08:41

"한은법 개정, 증권사 조사권 등 말바꿔"

-한은 "할 만큼 다 했는데, 이제와 배반이냐"
-경제위기 극복에 차질 빚어질 수도


정부와 한국은행의 갈등이 표면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두 기관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직후 한은을 전격 방문하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대립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공조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폐해가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

1일 정부 및 한은에 따르면 양 기관은 무엇보다 한은법 개정과 증권사에 대한 조사권 등을 놓고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는 "번번이 배신당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은은 증권사의 지급결제망 참여와 관련해 반발하는 은행들을 어렵게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애초 은행권 입장을 옹호했다.

이에 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한은 측에 '증권사에 대한 현지조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타협안을 내놨고, 한은이 이를 전격 수용했다. 한은은 은행들에게 '우격다짐식 설득'을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증권사들은 지난 2월 결제망 참여가 허용되고, 참가금도 5~7년에 걸쳐 분납할 수 있게 됐다.

정작 재정부와 금융위, 금융감독원은 최근 말을 180도 바꿔 현지조사권을 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에 한은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과 재정부는 한은법 개정을 놓고도 정면충돌할 분위기다. 재정부는 "한은법 개정에 대해 원칙적으로 공감한다"는 공식 입장과는 달리 현 시점에서 개정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방침을 확정지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현 시점에서 한은법 개정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재정부도 우리(금융위)와 같은 입장"고 못박았다.

이와관련 재정부가 최근 작성한 '한국은행법 개정 문제에 대한 의견'이란 문건에는 "중앙은행 제도를 변경하려할 경우 경제 전체의 금융행정시스템 및 정부조직의 개편 문제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며 "한은법 개정을 서둘러 추진하기 보다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은 관련기관이 당면한 위기극복에 전념할 상황이며, 현 시점에서 한은법 개정 추진시 소모적인 논쟁 및 기관간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정부는 특히, 지난 97년 한보, 기아차 부도 및 외환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당시 재정경제원, 한은이 한은법 개정 추진과정에서 대립해 시장대처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성"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은이 채권시장안정펀드, 자본확충펀드 등에 적극 협력한 것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 회복을 위한 의지도 담겨 있는 게 사실이다.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감독권, 증권사 조사권 등에 대한 정부의 반대가 강경해지자 "기껏 협력해 놓고, 배신당했다"는 불만이 한은 내부에 팽배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생각보다 훨씬 큰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긴밀한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양측이 정면충돌할 경우 엄청난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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