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찰스 메릴의 유산

머니투데이 정희경 부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 2009.02.27 07:10
세계자본의 심장으로 군림하던 미국의 월가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일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독점산업 등에서 막대한 부를 형성한 재력가들은 기업공개나 채권 발행, 인수·합병(M&A) 정보를 공유하며 그들 만의 재산을 키워나갔다.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IB)은 훌륭한 도구였다.

배타적인 분위기를 틈타 미공개 정보나 루머를 활용해 한몫 챙기려는 투기꾼도 속출했다. 어설프게 주식시장에 뛰어든 일반투자자들은 대공황으로 큰 손실을 본 후에는 아예 월가에 등을 돌려버렸다.

월가를 불신하던 일반인들을 주식시장에 다시 끌어내는 데 기여한 인물은 찰스 메릴과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가치투자'의 창시자 그레이엄은 주식투자의 기본이 되는 주가수익배율(PER)이나 부채비율, 장부가치 등의 개념을 처음으로 일반화했다. 그는 일반 대중이 그릇된 정보 대신 펀더멘털에 집중해 과학적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수제자 워런 버핏이 세계 최고 갑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직원 2명으로 출발한 메릴린치를 세계 최대 증권사로 키운 메릴은 업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주식에 대한 관심을 제고했다. 그는 전국적인 지점망을 구축하고 모든 고객에게 수준 높은 투자자료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증권산업 환경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창조적 기업가로 분류된다.

메릴은 직원들에게 루머나 귀에 솔깃한 비밀정보, 단기에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으로 고객을 현혹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문이었다. 정직한 거래를 강조한 그가 미국 기업 최초로 직원 연수원을 설립해 주식브로커의 위상을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업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JP모간이 남긴 것 이상의 업적이라고 한다.


그레이엄이나 메릴은 대공황이라는 유례 없는 위기를 맞아 모두가 움츠러든 사이 증권산업 발전의 초석을 놓은 것이다. 위기를 뛰어넘어 만든 기회도 자신 만이 아닌 산업 전반이 누릴 수 있도록 만든 점은 그들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다.

메릴의 성과 가운데 연수원 설립은 최근 국내 금융회사나 공공기관이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대거 채택하는 인턴제의 대안으로 검토할 만하다. 메릴의 일대기를 다룬 '찰스 메릴과 주식투자의 대중화'(원제 Wall Street to Main Street)에 따르면 당시 회사 내부에서도 연수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유급으로 키워놓은 인재들이 결국 다른 회사로 옮겨가지 않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실제 메릴린치 연수생의 25%가량이 이직했다. 메릴은 그러나 증권업계가 발전한다면 결국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밀어붙였다. '인재사관학교' 메릴린치를 거친 증권맨들은 증시에 호황이 찾아오자 업계의 버팀목이 됐다.

은행이나 공공기관들은 직원들의 허리띠를 졸라매 '공들여' 뽑은 인턴의 활용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평소보다 채용규모를 늘린 곳은 인턴에게 주로 허드렛일을 맡기는 실정이다. 차라리 이들을 경기회복기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금융예비군'으로 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불과 반년 전 증권사들은 평소의 배나 되는 연봉을 제시하고도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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