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때문에 증권사 직원들 “죽어난다”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 2009.03.04 10:09

[머니위크]자통법 후폭풍이 만든 명과 암

불완전 펀드판매를 방지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본시장통합법이 증권사 직원들을 옭죄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펀드판매가 뚝 끊긴데다 새로 따야 할 자격증이 늘어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뜩이나 장이 안 좋아 울상인데 투자자 보호 강화 등으로 펀드 판매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로워져서 판매가 거의 안 되고 있어요. 펀드 판매영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거죠.”

증권사 직원들이 죽을 맛인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펀드판매가 ‘뚝’ 끊겼다는 데 있다. 자통법 시행으로 펀드 판매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펀드가 ‘기피’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증시까지 맥을 못 추면서 펀드 장사는 파리를 날리고 있다.

씨티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형펀드 신규판매가 2월 들어 0.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4년간 두번째로 큰 폭의 감소다. 펀드가 제대로 판매되지 않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새롭게 강화된 투자자 보호절차가 한 몫을 한다고 씨티그룹은 분석했다. 투자자와 판매자가 이 제도에 익숙해지기까지는 펀드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펀드 판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새로운 펀드상품도 거의 출시되지 않고 있다.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평균 매일 5~6개씩 출시되던 신규펀드가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이후 평균 하루 1개꼴도 출시되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난 4일부터 20일까지 신규 설정된 공모펀드(클래스 제외)는 6개에 불과하다.

◆“두달 만에 자격증을 따라니…어떡해”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펀드를 판매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 자격증 제도가 도입된다는 데 있다.

그동안 금융회사 직원들은 증권펀드 투자상담사 자격증만 있으면 모든 펀드를 팔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는 5월부터는 이 자격증만으로는 주식형 채권형 혼합형펀드만 팔 수 있다. 부동산펀드나 파생상품펀드 같은 신상품은 전혀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직원들이 이 펀드를 팔려면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와 파생상품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을 새로 취득해야 한다.

금융투자협회가 주관하는 2009년 금융투자전문인력 자격시험 일정에 따르면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와 파생상품펀드투자상담사 시험은 3월8일, 4월12일 총 두번 실시된다. 5월1일부터 이 자격증이 없으면 파생상품이나 부동산펀드 등 신상품을 전혀 팔 수 없기 때문에 그 기간 안에 두 자격증을 새롭게 따야 한다는 얘기다.

자본시장법과 관련된 업무도 많아졌는데 자격증까지 새로 따야 하는 증권사 직원들 입장에서는 '폭탄선언'이나 다름없는 조치인 셈이다.

"2월이 다 돼서야 올해 금융투자전문인력 자격시험 일정 공문이 왔습니다. 5월부터는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와 파생상품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이 없으면 관련 상품을 팔 수 없다더군요. 근데 그런 소식을 겨우 두어달 전에 알려주면 어떻게 합니까? 시험 기회도 딱 2번 밖에 없어요. 만약 이 시험에서 떨어진다면 지점에서 펀드판매 영업을 못한다는 이야기고, 결국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 아닌가요?"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졸속 조치 비난

금융투자협회는 자본시장법이 불완전펀드 판매를 예방하고 투자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만큼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자격증 제도를 개설했다고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자통법 시행 이후 금융투자전문인력 자격증이 기존 11개에서 22개로 늘어났다. 자격증을 전문인력의 역할별 및 상품별로 세분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충분한 준비기간도 없이 펀드판매 자격증을 따라고 하는 것은 증권사 직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졸속 조치가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과장급 직원은 "고객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출시된 펀드 상품을 제대로 상담해줄 수 있는 친절한 직원이지 자격증이 아니다"며 "형식적으로 자격증만 많이 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새로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증권사 직원들은 온라인 강의다 뭐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고객들은 창구직원들이 어떤 자격증을 가졌는지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점에서 만난 한 고객은 "직원들이 펀드에 대한 전문지식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필요한 것은 실무경험이 아니겠느냐"며 "새롭게 자격증을 따는데 들이는 비용과 시간 대신 실무적인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금투협 새 자격증 시험으로 수익 "짭짤"

증권사 직원들은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있지만, 금투협은 반대의 상황이다. 새로운 자격시험으로 인해 수십억원에 달하는 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3월8일 첫 시행하는 파생상품펀드 및 부동산펀드투자상담사 자격시험 원서접수가 2월20일 마감됐는데 총 6만여명이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험의 응시료가 1만5000원임을 감안하면 응시료 수입은 총 9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 자격시험과 관련된 교재비용은 1만2000~1만3000원이다. 단순 교재비용만 따져서 계산할 때 이에 따른 매출은 7억2000만~7억8000만원이 된다.

금투협이 개설한 자격시험과 관련해서 온라인 유료강좌가 개설됐다. 여기에 등록한 직원들은 파생상품펀드와 부동산펀드자격시험에 각각 1만8000여명과 1만6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료강좌의 강의비는 자격증 당 2만5000원이다. 두 강좌의 총 수입은 8억5000만원이다.

여기에다 증권펀드 투자상담사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30시간의 증권판매교육 이수해야 하는 데 이 비용도 6만원이나 든다. 시험응시료 2만원에 응시자가 약 3만2000명인 것을 감안할 때 이것으로 올린 수입은 25억6000만원이다. 여러 비용들을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금액의 순수익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증권사 직원들은 가뜩이나 장도 어려운데 자통법 시행으로 이중, 삼중고를 겪고 있다며 누적된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밥이 설면 서걱서걱한 법이다. 법 시행에 앞서 충분히 증권사 직원들이나 고객들 입장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면 서걱서걱함은 곧 표가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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