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는 저평가 우량주, 투자해 볼만"

대담=채원배 전국사회부장, 정리=최중혁·사진=이명근 기자 | 2009.02.25 09:42

[머투초대석]노동일 경북대총장

'한강으로 진격하자'

6.25 때 구호가 아니다. 서울 취업을 지원해주겠다는 경북대 총학생회의 선거포스터 문구다. 지방대생들이 느끼는 어려움, 박탈감, 씁쓸함이 잘 묻어나는 한 마디다.

6.25 세대는 안다. 서울대와 저울질했던 경북대의 콧대 높은 위상을. 그러나 21세기 지방 국립대의 위상은 전투력을 상실한 한 마리 늙은 사자를 연상시킬 만큼 쇠락했다.

그러나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동일 경북대 총장도 그 중 한 사람. 그 자신 서울대 출신이지만 "지방대는 저평가 우량주"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발전기금이 생기는 곳이면 정부든, 기업이든, 국회든 어디든 달려간다. 하청업체 사장 같다는 소리도 듣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지방대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대교협 대학자율화추진위원장이기도 한 노 총장을 만나 21세기 지방대의 생존법, 대학자율화 성공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 상주대와 통합, 로스쿨 유치 등 재임 기간 동안 많은 일들을 해내신 것 같습니다.
▶대학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 방안을 마련하고 제시한 것에 대해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내부 구성원 간에 이견이나 갈등이 심해서 힘이 잘 모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잘 경영하면 어떤 조직도 잘 경영할 수 있다는 말이 생겼나 봅니다.

-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 대학자율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직책도 맡고 계신데요. 어떤 문제에 집중하고 계신지.

▶ '자율화'라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을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길이니까요. 그런데 자율화에는 반드시 책무성이 따릅니다. 이 두 가지 원칙에 맞춰서 고등교육법 개정을 진행 중이고 초안도 나왔습니다.

-최근의 3불 폐지 논란 등 정부의 대학자율화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큰 데 어떻게 보십니까. 경북대는 어떤 대입 전형을 마련하고 계신지요.

▶우수한 학생을 뽑고 싶은 것은 모든 대학들의 바램입니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뽑을 것이냐 하는 것이죠. 자율적으로 뽑되 공교육 정상화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대학이 실시하는 논술은 가장 모범적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율성과 책무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입학전형을 지속할 것입니다.

-연세대나 고려대는 다른 방향으로 입시안을 마련 중인 것 같은데요.

▶그동안 교육정책의 근간이 너무 평등 쪽으로 많이 가 있었습니다. 경쟁이 주류인 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7~8할 정도는 경쟁이 중심이고 2~3할은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지요. 기업과 세계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니 취업현장에서부터 바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상향평준화로 가는 게 맞다고 봐요.

그러나 전환기에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같은 선두그룹이 특히 잘 해줘야 합니다. 도덕성을 더 잘 지켜줘야지요. 개별 플레이에 몰두했다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수도 있어요. 이번 논란만 해도 대교협 내부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쟁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걸 보여주지 못하면 정부와 언론이 신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방대 위상이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신지요.


▶내부원인, 외부원인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수도권집중 현상은 이제 문화현상으로까지 굳어졌습니다. 지방 청년들의 서울에 대한 동경심은 이미 문화이고 정서가 됐어요. 그런데 외부적 원인 못지않게 내부적 원인도 중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지방대라고 다 같이 기울어지는 것만은 아니니까요.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대학이 있어요. 저희는 오래 전부터 서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세계로 나가자는 전략을 추진해 왔습니다. 국제화 프로그램은 지역 대학들이 더 기회가 많을 수 있어요. 외교부 등 많은 곳에서 우리 전략을 벤치마킹 하러 옵니다.

-그래도 학생을 수도권에 많이 뺏기고 유치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방대가 주식으로 치면 '저평가 우량주'라는 점을 많이 홍보하고 있어요. 서울 7개 사립대가 연합해서 전국으로 입시홍보를 다니는데 우리도 전남대, 부산대와 함께 수도권에 홍보를 다닐 겁니다. KTX가 생기고부터 거리가 2시간 이내로 가까워졌고 기숙사 시설도 뛰어나서 웬만한 수도권 대학보다 학업 여건이 좋아요. 저희만 해도 IT융복합과 그린에너지 특성화 대학이고 메디컬 분야도 강합니다. 게다가 우수한 세계화 프로그램, 장학 프로그램까지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고 봐요.

-로스쿨 합격생 중에 수도권 대학 출신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지방으로 많이 온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지역 출신 고등학생들이 수도권 명문대학에 진학했다가 지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만은 없다고 봐요. 문제는 이들이 지방에 왔다가 일자리가 없어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겠지요. 때문에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늘 얘기하고 다닙니다.

-요즘은 CEO 총장이라고 해서 돈도 잘 벌어야 하는 추세인데 국립대 총장도 마찬가지인지요?

▶국립대가 오히려 CEO 역할을 더 잘해야 합니다. 명예직인 시대는 지났어요. 대학이 연구개발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국가와 지역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지요. 때문에 지역 거점대학 총장은 국가수준의 R&D사업 수주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주 자체가 과거 배정 방식이 아니라 경쟁 방식이기 때문에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성화 전략도 잘 짜야하는데 신분이 보장된 1100명의 교수 분들이 자기영역에서는 모두 총장이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죠. 이런 갈등을 잘 해결하는 리더십이 총장에게는 요구됩니다.

-우리 사회에 학력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팽배합니다. 대학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정부정책의 실패작으로 봐야겠지요. 대학진학률이 90년대 30%대에서 지금은 80%대로 높아졌어요. 일본이 50%대, 미국이 60%대입니다. 기업으로 얘기하면 부실기업이 양산된 거죠. 되돌리기가 정말 어렵겠지만 국가적으로 대학진학률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한계 기업을 퇴출시키듯 대학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주는 정책이 필요해요.

-경북대 졸업생이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길 원하십니까.

▶2007년 15대 대기업 신임 임원 출신대학을 봤더니 서울대 다음으로 경북대가 많았어요. 어떤 조직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조직이 요구하는 성실성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한 세대 전에 삼성과 LG가 세계적 기업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이가 있었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돼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삼성, LG 임원에 우리대학 출신들이 많다”고 홍보하면 저를 보는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한 세대 후에는 경북대가 서울대와 자웅을 겨룰 수도 있겠지요.

-정치학자 출신이시고, 예전 박찬석 총장도 국회로 진출하셨는데 정치에 뜻은 없으신지요.

▶정치학도로서 젊었을 때는 정치적 포부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리를 했습니다. 좀 더 패기 있고 젊은 청년들이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지요. 정치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대학 경영도 국가 경영의 초석이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1948년생 △경북고·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박사 △서울대 총학생회장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원 △경북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소 소장 △대구경북정치학회 회장 △경북대 총장 △민주평통 자문위원 △전국국공립대학교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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