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으로 지각… 'X싼 바지' 오명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 2009.02.17 08:48

[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17편-근태는 기본중에 기본

누군가에게는 일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는 일이다.

학생 때 지각 한번 안 해본 사람 있을까 마는 그 때야 지각 좀 하더라도 '눈 한번' 질끈 감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그렇지가 않다. 안 그래도 눈치 볼 일 많은 신입사원 처지에 지각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가시방석 신세다. '단지 알람 소리가 안 들렸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기본이 안 돼 있다"는 호된 질책이다. 한번, 두 번, 지각 횟수가 늘어가다 보면 상사의 눈 밖에 나는 것도 금방이다.

회사가 지각하지 않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회식에, 야근에, 각종 교육에, 그렇다고 봐주는 일은 절대 없다. 어찌됐던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 외로운 잠과의 사투,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위한 첫 관문이다.

#한 대기업 홍보실의 박 모 대리(32)는 입사한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때 일을 잊지 못한다.

오전 8시가 출근시간인 이 회사 직원들은 회사 입구에서 사원증을 확인 받고 출근한다. 확인받는 순간 자동적으로 출근시간이 공개되는 셈이다. 입사 일주일도 안된 신입사원이던 박 대리는 그날 그만 15분 지각을 하고 말았다. 신입사원 '주제'에 지각이나 한다고 낙인찍히게 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 뭔가 좋은 생각이 스쳐갔다.

아직 자신에게는 사원증이 없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입구에서 확인만 거치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을 수만 있다면 지각은 들통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월담'을 감행하기로 했다. 먼저 검은 서류가방을 회사 안으로 휙 던져놓고 담을 넘기 시작했다. 무사히 담을 넘어 착지 지점을 확인하려는 순간 그는 심정이 멎는 줄 알았다.

건장한 체격의 시큐리티팀 직원 4명이 박 대리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밖으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방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담을 넘어 순순히 '체포'에 응한 박 대리. 하지만 수습도 쉽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신입사원이 담장을 넘는 일이 없었던 터라 홍보팀 직원이라고 주장해도 믿어주질 않았다. 사원증도 없고 사원번호도 몰랐다.

결국 시큐리티팀 사무실에 들어가 취조를 받듯 질문을 받고서야 홍보실에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홍보실도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 있었고 인원이 꽤 많은 지라 모든 직원이 신입사원의 이름을 빠르게 알기가 쉽지 않았다.

시큐리티팀과 통화한 홍보실 모 직원은 '박XX'란 신입사원 모른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결국 박 대리는 20분간 더 잡혀 있어야 했고, 20분 후 박 대리는 시큐리티 팀원과 함께 홍보실로 찾아가 자신이 홍보실 직원임을 밝혀냈다.

# 대기업 사원 A씨는 현재 다니는 회사가 두번째 직장이다. 첫 직장에 6개월 쯤 다니다 기회가 돼 새 직장으로 옮겼다. 옮기기 전 고민도 많았다. 옮길 회사가 더 탄탄한 회사인데다 급여조건도 좋았지만 몇 달 동안 정든 첫 직장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고심 끝에 회사를 옮긴지 2개월 쯤 됐을 때의 일이다. 전날 회식에서 '전쟁'을 치른 탓에 그날 아침은 유독 힘든 사투를 벌여야 했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겨우 눈을 뜨니 시계는 벌써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 하에 겨우 몸을 일으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어서 잠시나마 눈을 부칠 수 있었다. 앉자마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번 역은 논현역 입니다. 다음 역은 교보타워 사거리입니다." 꿀맛 같은 잠에 빠져 있는 사이 안내 방송이 귀에 들어왔다. 부랴부랴 서류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하마터면 정류장을 지나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로비로 들어서자 직장 동료 한명이 보였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동료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먼저 건넸다. "야 오랜만이네" 그런데 돌아온 동료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그래, 잘 지내? 그런데 아침부터 여긴 어쩐 일이야?" 아침에 시간 맞춰 출근했는데 "어쩐 일이라니?" A씨는 그때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몽사몽간에 그만 이전 직장으로 출근을 해 버린 것이었다. 민망해진 A씨는 "응 잠깐 볼일이 있어서.."라고 둘러댄 후 쏜살같이 사무실로 달려갔지만 지각을 면하지 못했다.

# 모 인터넷기업에 재직 중인 Y씨는 신입사원 시절 지각과 관련한 '치욕스러운'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집에서 차를 몰고 출근 중이던 Y씨는 전날 회식 탓인지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평소 과민성대장 증후군이 있던 Y씨는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스트레스와 피로로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었다.

식은땀이 나며 눈앞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자유로를 한참 달리던 중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차를 내팽겨 치다시피 멈추고 가파른 논밭을 구르듯 내려가 급한 볼일을 보게 됐다.

그런데 아뿔싸! 그만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바지를 내리기도 전에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인데 옷을 갈아입지 않고 출근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출근한지 겨우 한 달도 안된 신입사원이 지각이라니...교통편이 불편해 어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다녀야 했지만 그것도 눈총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Y씨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회사에 사실대로 얘기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늦은' 출근을 할지, '대충?' 수습하고 일단 출근부터 하는 게 맞을지 갈등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심한 Y씨는 상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얘기하고 허락을 구한 후 다시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늦은 출근을 하게 됐다.

사무실에 들어선 Y씨는 같은 팀 선배들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상사가 매일 아침 있는 회의에 Y씨의 지각 사유에 대해 '재미삼아' 얘기를 했던 것이다. 그날 내내 선배들의 놀림감이 됐던 Y씨는 그 후 후배들이 생기기 전까지 '똥싼바지'로 불려야 했다.

Y씨는 지금도 직장생활에서 정직이 최선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때 일은 잘한 것인지 아닌지 아직도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사 전문가들은 늦잠 때문에 지각하게 됐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최고의 대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빠져나갈 다른 핑계를 궁리하다 보면 상황이 이래저래 꼬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핑계가 탄로 나기라도 하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취업 인사포털인 인크루트가 지난해 말 기업의 인사담당자 2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지각시 대처법으로 '상사에게 전화해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는 항목을 택한 사람이 78.2%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전화보다는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출근해서 직접 사정을 설명한다'(10.3%) △'동료 직원에게 먼저 연락해 상사에게 잘 얘기해달라고 부탁한다'(7.7%) △'일단 출근한 다음 음료수나 간식을 돌리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노력한다'(2.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남재구 LG전자 인사팀 과장은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술자리에서 적정량의 음주로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없게 해야 하고, 출근할 때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며 "회사로 갈 수 있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사전에 확인해 만약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요령"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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