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 골방회의' 미국과 닮은꼴?

머니투데이 도병욱 기자 | 2009.02.15 17:47
# 지난해 10월 12일, 헨리 폴슨 당시 미 재무장관은 씨티그룹과 골드만삭스 등 9개 주요 투자은행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까지 재무부로 나오라"고 통보했다.

이튿날 오후 3시 재무부 회의실에 도착한 은행장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 '은행 지분을 정부에 파는데 동의한다'는 내용의 계약서가 놓인 때문이다. 계약서에는 임원 임금과 배당정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곧바로 "구제금융은 필요없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구제금융은 정부당국의 간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확보한 주식이 주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정부가 은행 경영에 간섭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당황한 은행장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서류에 서명해야만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다"는 폴슨 장관의 경고였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이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해져 건전한 은행까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채찍과 함께 당근도 제시됐다. 의결권을 행사하지도, 경영에 개입하지도 않겠다는 조건이었다. 결국 회의실에 들어갔던 은행장 9명은 서명을 한 뒤에야 재무부를 떠날 수 있었다.

# 15일 오후 3시, 국내 시중은행장들이 하나둘씩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건물에 들어섰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소집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워크숍에서 논의될 내용은 자본확충펀드, 중소기업 대출, 은행의 신뢰성 제고 등 은행 입장에서 껄끄러운 내용들이다. 특히 시중은행 입장에서 자본확충펀드 지원에 대한 토론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정부가 사실상 경영권을 쥐고 있는 은행을 제외한 국민, 신한, 하나은행은 자본확충펀드로 수혈 받는 것에 난색을 보여왔다. 당국은 절대 경영권 간섭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은행들은 미심쩍다는 반응이다.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권을 간섭하지 않겠다는 '당근'과 자금지원을 거부했다가는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압박' 모두 폴슨 장관의 전략을 연상케한다.

장소 역시 미 재무부의 '골방'이 오버랩된다. 폴슨 장관과 미국 은행장들의 모임처럼 이날 워크숍도 넓고 우아한 강당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골방에서 진행됐다. 20여명의 참석자가 겨우 들어갈 좁은 골방에서 은행장들은 당국 고위관계자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배석자까지 물렸다. 은행장들이 자신의 처지가 '구석에 몰린 쥐'와 비슷하다고 한탄할 법하다.

진 위원장과 함께 올라간 골방 책상 위에는 자본확충펀드 지원 동의서가 놓여있고, "동의하지 않으면 못 나간다"는 발언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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