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롱' '먹다'가 게임금칙어?

머니투데이 장웅조 기자 | 2009.02.11 15:10

게임진흥원·국어원의 게임금칙어 선정..."과도한 통제다"

'바보'와 '메롱'은 폭력적 표현, '결합'과 '경험'은 선정적 표현일까?

정부(문광부) 산하기관인 게임산업진흥원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이들이 지난 1월 공동으로 발간·배포한 '게임언어 건전화 지침서(이하 지침서)'가 해당 표현들을 게임 내 '금칙어'로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침서는 '직딩'이나 '원조', '같은' 등의 표현들도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게임 내 사용을 금하라고 권한다. '먹다', '구멍', '립서비스', '조개' 등도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칙어로 선정했다. 조금이라도 꺼림칙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중의적(衆意的)인 단어는 일단 금지하고 본다는 식이다.

금칙어란 '불건전성' 등을 이유로 게임 내 채팅이나 검색 등에서 사용할 수 없게 한 표현들을 뜻한다. 게임 상에서 금칙어를 포함한 문장을 쓰게 될 경우 입력 자체가 되지 않거나, 문제의 표현이 가려진 채 화면에 나가게 된다. 금칙어는 기존에는 게임업체별로 다르게 규정했는데, 이번에 정부 산하기관이 나서서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문제는 금칙어를 이처럼 과도하게 설정할 경우 이용자들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축소시켜 온라인 공간의 소통이 불편해진다는 데 있다. 예컨대, 지침서의 권장을 따라 '개'를 금칙어로 설정하면 '개최하다', '개막식', '개념글' 등의 표현도 쓸 수 없게 되는 식이다.

게임업계나 언어 연구자들은 이에 대해 '지나친 언어통제'라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하면 RPG(역할수행게임) 게임을 서비스하는 모든 업체들이 '경험치'라는 표현을 삭제해야 할 것"이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앞으로 '아이템을 먹었다'고 자랑도 못하겠다"며 황당해했다.

금칙어 설정의 효과가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다른 인터넷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은 금칙어로 선정된 단어를 조금만 바꿔서 표현해도 얼마든지 원하는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2004년 서울시 버스개편 당시 서울시 측이 '명바기'를 게시판 금칙어로 설정했지만, 네티즌들이 '명배기', '맹바기', '맹배기' 등으로 표현을 바꿔가며 규제망을 뚫은 바 있다는 것.


대중의 언어사용을 정부가 통제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언어연구가인 고길섶 문화연대 편집실장은 "금칙어를 통한 언어규제 자체가 문화적 권력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국가가 이를 표준화해 언어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언중(言衆)의 언어세계의 불량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계약애인'을 금칙어로 설정하는 것은 그 단어 하나에 대한 금지가 아니라, 계약애인 자체의 문화적 가능성에 대한 금지"라는 이야기다.

그는 게임산업진흥원과 국립국어원이 금칙어의 선정기준으로 제시한 폭력성, 선정성, 차별성이라는 규정에 대해 "판단자의 감정구조에 따른 주관적인 잣대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쩐다'라는 말이나 '가출' '개뿔' '계약동거' 등의 말들이 왜 금칙어로 선정되어야 하는지 어이가 없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고 실장은 "온라인 공간의 언어가 국어를 파괴한다고 보는 것은 '국어'라는 범주를 표준어로만 보기 때문"이라며 "비표준적으로 변이된 언어들도 국어이고, 언어란 이미 사회화되고 표준화된것만 사용돼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공간이 오히려 언어적 창의성과 감수성 등을 높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도 "금칙어라는 제도 자체가 비민주주의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은 지침서를 발간한 기관도 일부 인정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원의 문화진흥팀 이종훈 대리는 "마음만 먹으면 금칙어 설정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맞고, 과다한 금칙어 설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체들이 탄력적으로 선별하고 수정을 했으면 좋겠다"며 "금칙어를 등급별로 나눠 분류했으니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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